90 likes | 356 Views
하나 , 들어가기. 하나 , 들어가기. 다이어트 공화국 , 대한민국 다이어트는 유행 산업이다 . 거의 해마다 새로운 다이어트법이 등장한다 . 유행은 빠르게 흘러간다 . 한 번 밀려난 제품은 다시 찾지 않는다 . 이처럼 유행이 심한 다이어트 산업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 매년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E N D
하나, 들어가기 다이어트 공화국, 대한민국 다이어트는 유행 산업이다. 거의 해마다 새로운 다이어트법이 등장한다. 유행은 빠르게 흘러간다. 한 번 밀려난 제품은 다시 찾지 않는다. 이처럼 유행이 심한 다이어트 산업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매년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다이어트 시장을 이끄는 중요한 축은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어 하는 젊은 여성들이다. 다이어트에 대한 지나친 강박은 정상 체중이거나 오히려 저체중인데도 계속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정신적 비만’을 유발하기도 한다.2010년 보건 복지부의 조사에서 서울 지역의 비만 인구 비율은 21.7%로 나타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절반 이상인 56%가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영국 연구팀이 22개국 남녀 대학생 1만 8512명을 조사해 2006년 ‘국제비만학회지’에 발표한 ‘국제건강행태연구’결과를 보면 비만도를 보여주는 체질량 지수는 한국 여대생이 22개국 중 19.3으로 가장 낮았지만 다이어트 중인 여학생은 77%로 1위를 차지했다. 거식과 폭식, 그리고 다이어트를 유발하는 밥상은 우리나라의 밥상이 아니다. 이는 대부분 패스트 푸드, 인스턴트 음식들이 기반이 된 식습관에서 기인한다.
둘, 비춰보기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 평민의 평균 수명은 24세에 불과했지만 영조는 83세까지 살았다. 영조는 잡곡섭취, 하루 세끼 엄수, 건강검진의 세가지 원칙을 지키며 장수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수라상에서 밥은 백반과 팥을 우려낸 물로 지은 홍반 두 가지가 함께 올랐는데 영조는 홍반과 잡곡밥을 즐겼다. 또한 대부분의 왕족은 하루 다섯차례의 식사를 즐겼으나 영조는 세끼만을, 그것도 소식으로 섭취했다. 승정원 일기에 따르면 영조는 재위 52년 동안 모두 7,284회, 영평균 140회의 진찰기록이 있을 만큼 건강에 신경썼다.
‘다이어트’는 탕평책의 핵심 • 영조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하기 위해 음식의 양과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절식과 노환에 대한 치료약을 거부하는 것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였다. • “임금이 무신년의 변란 뒤부터 노론, 소론,양편 사람을 아울러써서 탕평의 정치를 하였지만, 당인이 마음을 고치지 않은 것을 매우 미워하였으므로, 이따금 일에 따라 몹시 노하여 합문을 닫고 조정에 나오지 않거나 음식을 물리치고 먹지 않으며 시상을 거론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영조 15년 무오년조 기사 중 – • “탕제를 올리지 못하게 하므로 대신과 약방에서 날마다 청하였으나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이 때 임금의 마음이 매우 번뇌하여 매번 없는 가운데서 일이 생기게 하므로, 온 조정이 항상 어쩔 줄을 몰랐다.” • 조선왕조실록 영조 47년 계미조 기사 중 탕평채 전통사회에서 왕의 건강은 국가조직의 안정과 유지에 핵심적인 상황이었고, 이를 영조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세종대왕, 사실은 비만환자? 훈민정음 반포, 과학기술 장려 등 역사에 손 꼽히는 왕으로 추앙 받는 세종대왕. 그러나 그는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성인병 환자였다. 운동을 싫어하는 데다가 대식가, 육식 선호가 였던 그는 이미 35세 때 당뇨병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시력의 손상을 입었고, 이 후 온천을 이용하여 이를 치료하려 하였으나 차도를 보지 못하였다.
셋, 돌아보기 사회는 우리에게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한 쪽에서는 완벽한 신체의 잣대를 들이대며 다이어트를 강요하고, 한 쪽에서는 그를 만류한다. 어느덧, 우리는 자신을 위한 밥상이 아닌 타인을 위한 밥상을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위하여 우리는 이러한 밥상을 맞이하는가?
넷, 나누어보기 예시 이번 강의에 실린 거식증이나 폭식증은 물론이고, 다이어트 역시 나와는 거리가 있는 주제이다. 아마 지금 밥상 인문학을 함께 수강하고 있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긴한데, 당연히 입으로는 항상 살을 빼겠네, 소식(少食)해야겠네 양심상 혹은 습관상 말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독한 의지도, 자제력도 없는 나에게 다이어트는 언제나 '내일부터'이다. 이런 나이지만 그래도 자연스럽게 다이어트 아닌 다이어트를 경험한 적이 몇번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경험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첫째는 소위 말하는 '입맛이 없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 남들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공부 하는 게 힘들어서 등등 입맛이 없을 이유가 꽤나 많은 것 같던데 나는 어려서부터 입맛 없을 새 없이 많이 먹고 또 먹으며 자라서인지 '입맛없다' 라는 말이 와닿은 적이 없었다. 적어도 머리가 어느정도 크고나서 처음 진심으로 좋아하며 만난 남자친구와의 헤어짐을 맞기 전까지는 정말로 그랬다! 서로 싸우거나 싫어져서 헤어진 것도 아니었고, 지금 돌아보면 말그대로 너무 어리고 사랑이 사랑인줄 몰라 (오글오글) 헤어졌던 탓인지, 그게 당시 어린 나에게는 꽤나 큰 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슬픔이자 변화이자 상처이자 미련이자 '밥 생각'이 거짓말처럼 뚝 떨어져 종적을 감추게 한 바람이 불었던 2010년의 늦겨울은 정말이지 추웠다.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는 당시 내 세상에서 가장 덜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입맛이 없었다는 사실도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고나서 당시를 돌아봤을 때야 깨달았을 정도니 말 다했지, 뭐. 그 미련은 생각보다도 훨씬, 아주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며 떨어져나갈줄을 몰랐지만 사라졌던 입맛은 사실 사나흘 뒤에 금방 돌아왔고 아마도 눈물의 비빔밥을 시작으로 그 겨울의 자연 다이어트는 그렇게 끝이 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