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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Other to the Abject Music as Cultural Trope. ( 본질을 벗어난 ) 다른 이류로부터 영락 ( 쇠락 ) 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 문화적 수사 ( 학 ) 으로서의 음악. 2009-21738 . 류혜린. 보편적인 원리 ( 원칙 ) 보다는 구체적인 인간 활동과 관련하여 이성 , 언어 그리고 주관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현대적인 노력의 조화 는 음악성에 있어서 고전적인 패러다임 변동의 도화선 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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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ation Transcript
From the other to the abject music as cultural trope

From the Other to the AbjectMusic as Cultural Trope

(본질을 벗어난)다른 이류로부터 영락(쇠락)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수사(학)으로서의 음악


2009 21738

2009-21738

류혜린


  • 보편적인 원리(원칙) 보다는 구체적인 인간 활동과 관련하여 이성, 언어 그리고 주관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현대적인 노력의 조화는 음악성에 있어서 고전적인 패러다임 변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식이 클래식 음악에 제공하는 것은 그 음악의 현대적인 주관성에 대한 관계를 인정하고, 탐구하고, 파괴하고, 재건할 수 있는 기회이며, 그렇게 함으로서 지금은 제작 단계에 있을지도 모르는 후기 근대적인 주관성에 대한 다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 변화의 논리의역사적 힘은 여성다움보다는 남성다움, 동성애 보다는 이성애, 순백이 아닌 것 보다는 순백에, 동양보다는 서양에, 원시적인 것 보다는 문화에, 낮은 문화 보다는 높은 문화에, 낮은 사회 계층 보다는 높은 계층에 특권을 주는 것이었다.

  • 이번 장(chapter) 논쟁점은 “음악은 18세기 중엽 이래로 변화의 논리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유대는 Self(본질적인 것)과 other(이류, 본질적이지 못한 것)의 확인에 있어서 조직적인 모순(자가당착)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이해하는 것이 이러한 모순을 영속화 시키는 문화적인 제도로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음악은 청각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표현에 구성되어진 대상인 것이다. 그것은 음악적인 미학, 상상력이 풍부한 문학, 그리고 반사적으로 음악적인 구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화적인 수사로서의 음악인 것이다.


  • 음악적 학식은 특히 성(gender)과 문화적인 정체성과 관련하여 재빨리 변화의 논리에 관심을 가졌다.

  • Susan McClary가 제시하는바 반음계가 많은 곡의 형식(chromaticism)은 조성음악을 풍부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곡의 종결을 위해서 3화음으로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 chromaticism이 문화적인 여성스러움의 경향을 띄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McClary는 서구 문화에서 음악 그 자체는 항상 이성을 기만하고 욕망을 일으키는 여성적인 이류(비본질적인 요소)로 취급되는 위험에 처해 있다고 언급했다.


  • 음악 그 자체를 이류(비본질적인 것)로 간주하는 문화적 상황에서, 음악 작품이나 양식은 그 자신의 음악성을 극복하지 않고 형식에 의해서 이류를 극복할 수 없다. 결코 해결책을 요구하지 못하고, 이러한 자가 당착(모순)은 문화적 수사로서 음악의 현대적 제도에 기본적이었다.

  • 변화의 논리는 분명히 둘로 이루어지는 사고의 특별한 경우이다.

  • Michel Foucault가 제시하는 것처럼 현대적인 개별화는 개론에서 각론으로 옮겨가고 있다. 힘이 행사되어지는 사람들은 힘을 행사하는 사람들보다 더 강렬하게 개별화(차별화)되고 있다. 아이는 성인보다 더 개별화된다. 환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범죄인은 정상적인 사람과 비범죄인보다 더 개별화 된다.


  • 음악의 미학만 가장 상태로 머무른다면 Richard Wagner의 반유대주의, Heinrich Schenker의 독일인의 정치적 문화적인 패권주의에 대한 꿈, Charles Ives의 여성 혐오와 동성애 공포증 이 모든 것들이 그들 자신들에게 음악 양식에 대한 두 가지 표현의 기초를 가르치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 유대인 문화의 천박성(부르조아적이며 선율적으로 분리된)은 독일인의 유기체론(혁명적이고 동기적으로 이음매가 없는)에 대립된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천박함(수직적이고 기계론주의자적인)은 Schenker의 독일 유기체설(직선적이며 활력주의자적인)과 대치된다. 연약한 피상성(유행을 쫓는 그리고 관능적인)은 Ives의 남성적인 정신(반항적이며, 엄격한)에 대치된다.


  • 이중성은 역사처럼 종종 2번 일어난다. 처음에는 정치로서, 두 번째는 이데올로기로서. 요약하면 두 가지 생각은 항상 도덕적인 차원을 가진다.

  • Nietzsche는 권위주의자의 이상에서 어떠한 낭만적인 이야기도 찾지 못하고 오직 그것들의 마취성의 특성(속성)에서 위험한 매력을 느낀다.

  • Nietzsche의 text에는 철과 혈로 가득차 있으며 현대의 괴물(Minotaur 파괴자) Wagner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Wagner를 여성 Wagnerian(바그너 숭배자)라고 선언한다.

  • 그러나 Nietzsche의 Wagner에 대한 반감은 사실은 역류하는 감정, 매력. 사랑을 탈피할 수 없으며 본심은 이것들에 의존하고 있다.


  • 그리고 Nietzsche의 신랄한수사법에 대하여 Wagner의 음악은 이러한 합일(화합, 일치)의 일부로 남아있다.

  • Wagner를 이류로서 구성하고 정통함에 있어서,Nietzsche는 또한 해체주의를 세우고 부분적으로 그 이론의 우월성을 원상으로 되돌려 놓는다.

  • 극단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 차이는 현저하다. 예상되듯이 터득되어진 이류에 대한 역전은 무엇보다도 음악적이다. 그것은 모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음악과 음악적 미학에서 발생되는데 그런데 그 모순에 의해서 이류(other)인 음악이 그 자신의 음악성을 희생하여 본질(self)확인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 일단 변화의 논리가 바깥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안으로부터 음악에 작용하기 시작하면 18C에 미학의 탄생 후에 증가하는 주장(역설), 문화적인 수사로서의 음악의 불안정성과 함께 일어나는 어떤 일은 억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 Wagner는 Parsifal에서 멘델스존식의 수사법을 그 자신이 숙달하는(정통하는) 것을 몸소 보여 주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에서 Wagner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그리고 음악적으로 멘델스존의 상(영상)에 대해서 특히 음악에 윤리적, 문학적, 종교적 힘을 부여하려는 멘델스존의 야망에 대해서 주저하는힘을 보여준다.


  • Schenker는 일반적으로 숙달과 출산력있는 남성적인 언어로 음악을 관련의 예술로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인간 영혼에 대한 음악의 비유적인호소를 설명하려고 시도할 때 그는 여성화 한다. 음악이라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배경에 따라 발전하는 것처럼 인간 존재는 배경에 따라 어머니의 몸 속에서 그의 첫 생활부터 탄생의 순간에 그의 첫 울음부터 어린 시절을 통하여 노년까지의 성숙을 통하여 그의 몸과 정신이 발달한다. 이러한 유추에서 음악적인 배경은 어머니의 몸 속에 존재한다. Schenker가 ‘그 밖의 다른 어떤 곳’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음악적인 배경은어머니의 자궁인 것이다.

  • Wagner 의 멘델스존에게로의 복귀처럼, 이 복귀는 우연한(우발적인) 이상을 가지고 있다. Schenker는 또한 배경과 전경 사이의 유기적 관련에 대한 숙달(정통) 내에서 외부세계로부터 음악의 완전한 독립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 마지막으로 Ives조차도 여성적인 유동성, 그가 저주를 발견했던 부드러움을 환기시키는 음악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소나타 형식 재현은 Susan McClary가 제시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tonic 아래로 가져옴으로써 우세하게 들렸던 여성적인(부드러운) second-group materials를숙달(정통)하고 있다.

  • 변화의 논리에서 음악은 항상 궁극적으로 다른 쪽(이류)에 있다. 음악성이 종종 일반적으로 별개의 것(다른 것)의 명백한 표시(sign)로서 중요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헌신으로 음악을 옹호(변론)하는 것- 항상 현대적인 문화적인 수사로서 음악을 의미하는 것-음악에 대하여 본질이라는 잡역부를 너무 많이 찾아주는 문화적 정치적 비판에 대항하며 이것은 유혹적이다.


그러나 !!!

  • 그러나 비록 전도(역전, 복귀)에 대한 감정이 우리의 즐거움과 우리의 비판적 이해 양쪽을 갱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전도는 여전히 그것이 반대하는 논리 속에 갇혀있다. 사회적인 그리고 인식적인 권위는 여전히 강력하게 self 쪽으로 끌어당긴다.


  • Carl Dahlhaus는 그의 권위 있는 ‘19C의 음악’에서 그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려고 시도한다.

  • Dahlhaus에게 사회적 역사는 의심스런 예술적 현상의 음악에만 두드러진다. ‘19C 음악’에서는 그 세기의 예술 음악을 베토벤과 로시니로 확인된 ‘twin styles’로 분류하려고 시도한다. 쌍둥이 양식의 이원성은 빠르게 self와 other의 대조가 된다.

  • 베토벤식의 양식은 상대적으로 자치권이 있는(자주적인) 음악 작품을 만들어 낸다. 주제의 개념(생각)의 중요성의 발전시키는 자주적인 음악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작품은 문학 작품과 철학과 동등한 기준에서 원문의 힘을 주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해석상의 청취가 번역 되는데 필요한 의미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 로시니식의 양식은 여러 행사, 공연을 위한 단순한 비법처럼 그렇게 많이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러한 행사에 있어서는 주선율의 개념이 consequence(중요성)없이 그러나 마법적인 효과로 되풀이된다. 그 마법은 전적으로즉각적이다. 로시니식의 행사는 이해되어질 필요가 없이 단지 수동적으로 들려지고 행사의 청중을 사로잡으면 된다.

  • 베토벤이 좋은 양식을 가진 바이론적 기풍을 가진 영웅으로서 홀로 위엄 있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Rossini는 Nietzsche의 Wagner처럼 현대 시대의 고른 군중심리를 구현한다. 그래서 변화의 논리는 Rossini에게 평등한 시간을 준다. 적어도 Rossini의 더 유명한 19C 청중들 중의 한 사람은 여성으로서, 통속적인 인물로서 그 작곡가의 Dahlhaus에 대한 표현을 예상하게 해준다.


  • 음악이 윤리적인 면으로 작용하고, 자기 제어가 가장 각력한 상황에서도, 현대의 음악은 문화적으로 위임된 다른 것과 함께 말과 시각적인 전달방식을 제공해왔다: 유동적이고, 불합리한, 수동적인, 무한한 위임된 다른 것들이 있다. 음악은 실로 이러한 특성들의 결합에 주어진 이름이며 sonoric(울리는) 혹은 그렇지 않은, 특히 똑같은 것, 여자에 대한 다른 이름과 관련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동의어는 우연이 아니다. 18세기에 미학의 발전은 한 때 의기양양한 그리고 아직도 매력적인 원리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그 원리는 예술의 기능은 인식행위에 있어서 주체와 객체의 상호 결의를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 이러한 원칙의 체제(제도) 아래에서, 음악은 새로운 우주의 조화와 숙성된 관계를 보완하고 결국에는 19C의 사정을 모범적인 예술로 이끌어간 새로운 이상적인 차원을 취했다. 결국 그 집합점은음악을 새로운 목적으로의 여성성과 여성화를 전통적으로 연관시키는 것을 채택하게 된다.


  • 변화의 논리 아래에서 의미 있는 음악의 범위는 미학 시대의 문학에 의해서 잘 표현된다. 그런데 미학 시대의 문학은 일상적으로 언어, 개념적인 생각, 지각 있는 냉정(침착함)의 이류로서 음악을 불러 온다.이러한 이류화는 그 자체의 정당성으로 넓은 영역을 가진다. 이류화는 가장 우연한 관례로 나타낼 수 있다.

  • 예를 들면 음악을 보통 여성의 목소리로 언급하는 것, 그리고 가장 깊이 고려해 볼 때 Proust의 놀라운 제의, 즉, 음악은 언어와 이성의 자기 확신의 목소리에 대한 헛된 대안, -언어의 발명, 단어의 형성, 사상의 분석이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영혼들 사이에 의사소통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르는 독특한 예들 등등이다.


  • 음악은 이류이고 그것은 항상 또 다른 것에 속한다. 그리고 그것이 Self(본질)을 진동하게 하고 ①다른 어떤 것으로 고동치게 하는 것을 들을 때, (② 조정된 현, 여성의 육체, 신성한 지성의 개입 앞에 자연의 자궁) (*①②는 같은 것)Rimbaud는 글로 쓰기를.노래는 노래로 불리워진 사상(생각)이 아니면 좀처럼 그 가수에 의해서 이해되어 지지 못한다.

  • 왜냐하면 ‘나’라는 것은 그 밖의 다른 어떤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데 나타나는 궁극적인 형식은 어머니의 몸과 관련되는 미분화의 광대한 상태로의 역전인 것이다.


  • 우리가 이 이야기를 한 걸음 더 따라가면, 방어적인 수사학과 마주치게 되는데, 방어적인 수사에 의해서 그 본질을 침식하는 음악이 비 이상적인 방해물이나 혹은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가끔 청자가 거부하거나 추방하는 만족과 뒤섞인다. 음악은 이와 같이 해서 Julia Kristeva가 비천한 것이라고 부르는 모성애적인 것과의 혼합의 분야에 속하는 어떤 것, 그 주체의 원상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 거칠게 만들어져야 하는 어떤 것이 된다.

  • 음악적인 비천함에 대한 수사는 문학보다 비평이 더 대표적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첫 번째 예는 Nietsche가 Wagner식의 라이트 모티브를 이상적인 이쑤시개로 부르는 것, 음식의 잔반을 처리하는 기회, 혹은 Wagner에게 귀를 기울이는 효과를 알코올을 계속 소비하는 효과와 동등시하는 것이다.


예시

  • ……나의 불타는 영혼 (……my ardent soul)

  • 나는 아침(다음 날)을 상관하지 않는다.(I care not foror the morrow.)

  • 나는 간으로 만든 고기 국물 속에 감자를 짓이겨 넣는다.(In liver gravy Bloom mashed mashedpotatos.)

  • 불타는 영혼의 차량으로서 음악은 환유적인 편차를 받는다. foror을 for로, 과장하는 목소리의 느낌은 찐득찐득한 감자의 덩어리(mass, 원래는 mash-짓이겨서 걸쭉하게 만든 음식으로 해야함.)와 간의 육즙으로 무시된다.


  • 고전음악 공연에 있어서 공연자의 중재에 대한 제한은 이제 더 이상 실행 할 수 없지만, 같은 에너지의 부재의 표시로 불리는 것으로써 기여한다. 음악의 이류성은 매우 높은 전압에서 규율적인 통제의 두 가지 방식, 공연자의 점수 통지서와 훈련 사이에서 방어적인 자리매김에 의해서 구성된다.

  • 감동적인 공연이 방어적인 관례들을 실패하게 할 때 , 시뮬레이션 실패가 현실적인 것이 될 때, 청중은 두 가지가 이류로써 음악의 자리 매김을 반영하고 다시 제정하는 흥분으로 반응한다. 그러한 흥분(frenzy)은 숭배 수준의 팬이 되고, 그러한 열과의 외부적인 한계는 슈퍼스타의 유행인데, 이것은 19세기에 Liszt와 Gottschalk와 같은 인물들로 시작된다. 대중문화의 발전과 함께 슈퍼스타의 특성은 발전된다. Jenny Lind, EnricoCaruso, Leopold Stokowski와 그런 인물들은, 양다리를 벌리고 걷는데(기화를 엿보는데), 그들과 대중 예술은 전적으로 인기 있는 인물들 프랭크시나트라, 엘비스프레슬리, 비틀즈와 같은 인물들에 의해서 대치된다.


  • 규범적인 대상으로서 음악은 문화적인 수사로서의 음악이 규범적인 대상으로서의 음악이 될 때까지, 문화적인 수사로서의 음악이 된다. 이러한 사태는 그것의 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논리의 한 가지 자주 주목 받는 특징은 억압받는 것에 대한 프로이드 학설의 문화적인 전위형이다.

  • 내가 이 책에서 강요하고 있는 후기 현대주의자의 음악성은 궁극적으로 변화의 논리로부터의 규범적인 가치를 그러한 수행적인 청취로 전환하려는 시도이다. 그러한 논리가 가동을 멈출 것이란 것이 아니고 인정된 환상적인 방식으로, 더 유연한 것으로 공개되는 순간에 가능한 방식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음악적인 경험의 더 많은 더 부수적인 논리로 공개되는 시점에서 작용할 것이다. 현대주의자의 관점으로 보면 그러한 경험은 혼란스럽게 그래서 이류적인 것(다른 것)으로 그리고 정확히 존재하는 것인 의미에 있어서 혼란스럽고 다른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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