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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XI NEWSCLIPPING

Website : http://www.wexi.biz 로 오시면 보다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WEXI NEWSCLIPPING. Contents. 제 200 호. 상대가 3000 달러 달라는데 1 만 달러 준다면 형편없는 협상인가 英 수리 서비스 업체 팀슨社 팀슨 사장 가치관 혼재 시대에 ‘벙커’로 남지 않으려면 소통하는 SNS 넘어 유통하는 SNS 로 일본은 ' 직장인 왕따 ' 대책 … 한국은 ' 왕따 직장인 ' 해고 LG 전자 , 시트콤으로 직원간 소통문화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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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ebsite : http://www.wexi.biz로 오시면 보다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WEXI NEWSCLIPPING Contents 제 200호 상대가 3000달러 달라는데 1만 달러 준다면 형편없는 협상인가 英 수리 서비스 업체 팀슨社 팀슨 사장 가치관 혼재 시대에 ‘벙커’로 남지 않으려면 소통하는 SNS 넘어 유통하는 SNS로 일본은 '직장인 왕따' 대책… 한국은 '왕따 직장인' 해고 LG전자, 시트콤으로 직원간 소통문화 확산

  2. 당당히 실패하라, 실패를 공개하라 상대 쥐어짜는 협상이 성공한 협상은 아니다 그냥 이긴 협상이다 성공한 협상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충족시키는 것 말하자면 신뢰나 평판… 당장의 경제적 이익 위한 이기는 협상보다 성공한 협상이 고수의 길 '성공한 협상'이란 무엇일까? 여기 두 가지 협상 사례가 있다. 아래의 협상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1. 1930년대 초, 미국 연구기관의 원장과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학자가 만났다. 학자를 미국으로 스카우트하기 위해서다. 원장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연봉은 얼마 드리면 될까요?" 학자가 말한다. "3000달러면 충분합니다. 이보다 생활비가 적게 든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면…." 잠시 고민에 빠진 원장이 제안한다. "연봉 1만달러를 드리겠습니다!" 학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2. 승자와 패자가 만났다. 종전협상을 위해서다. 패장이 입을 연다. "어떤 요구를 수용하면 되겠소?" 패장의 머릿속엔 전쟁 포로, 전쟁 배상금, 전범 처리 이런 단어들이 그득하다. 승자가 말한다. "요구사항은 단 하나입니다.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먼 길이니 타고 있던 말도 그냥 가져가시오. 귀향하는 데 필요한 식량은 우리가 어떻게든 준비해 보겠소" 패장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떤가? 3000달러를 요구한 학자에게 1만달러를 주겠다는 원장. 패장에게 터무니없이 관대한 협상조건을 내건 장군. 이들은 형편없는 협상가인가? 아니다. 이들은 분명 '최고의 협상'을 했다. 왜일까? 앞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되짚어보자. 연봉 3000달러를 요구한 학자는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이다. 연구밖에 몰라 세상 물정에 어둡던 그는 미국 교수의 평균 몸값(7000달러)을 몰랐다. 그냥 자신이 유럽에서 받던 연봉(3000달러)을 소박하게 요구한 것. 이에 대해 프린스턴대의 플렉스너 원장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최고 대우(1만달러)를 약속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객관적 몸값을 알게 된다. '1년간 7000달러를 아끼느니 천재 아인슈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낫다'는 게 플렉스너의 판단이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에서 기념비적인 연구성과를 만들어낸다. 그러자 하버드·예일 등 유수의 대학들은 아인슈타인을 '모시고' 싶어 안달이 난다. 1만달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며….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평생 프린스턴 대학을 위해 봉직한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 프린스턴 대학에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킨 셈이다. 두 번째 사례는 남북전쟁 종전협상 장면이다. 북군 총사령관인 그랜트 장군은 남군 총사령관, 패장인 리 장군에게 허무할 정도로 관대한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3. 분명 막대한 전쟁보상금, 관련자 처벌 등과 같은 까다로운 요구를 했더라도 패장인 리 장군이 이를 거절키는 어려웠을 것이다. 협상이 '허무하게' 타결되고 리 장군이 항복문서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북군 진영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진다. 병사들은 연병장에 모여 함성을 질렀고, 포병들은 대포를 쏘아댔다. 이 광경을 본 그랜트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단호히 명령한다. "적에게 승리했을 때 하는 어떤 행사도 당장 중단하라. 반란군은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다." 왜 그랬을까? 분명 그랜트도 사람인 이상, 지난 5년간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남군을 철저히 응징하고픈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국가적 통합'이 '패자에 대한 복수'보다 더 큰 가치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랜트를 포함한 북군의 리더들이 '통합'보다 '응징'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판단했다면? '피의 복수'가 이어졌을 것이고 아마도 오늘날 미국은 북부 USA, 남부 USA로 찢겨 망국적인 지역감정 싸움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기업 임원들을 상대로 협상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스스로 뛰어난 협상가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특히 구매 담당이 그렇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면 답은 대게 비슷하다. 상대의 요구(position)를 최소로 받아들이고 내 요구를 최대한 관철시켰다는 것. 한마디로 적게 주고 많이 받았다는 얘기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협상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식으로 상대를 '쥐어짜는' 협상은 성공한 협상이 아니다. 그냥 '이긴' 협상이다. 경제적 이익이라는 가치를 순간적으로 극대화했을지 몰라도, 협력업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신뢰', 우리 기업에 대한 '평판'이라는 가치는 모두 내동댕이친 셈이다. 물론 찰나의 경제적 이익이 신뢰나 평판이라는 가치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다. 기업 간 거래라는 게 과연 한 번에 그치고 말 이벤트인지, 아니면 계속 지속될 인연이지. 성공한 협상이란 요구 사항을 최대한 얻어내는 협상이 아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충족시키는 협상이다. 또 이를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내는 협상이다. 그랜트 장군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국가 통합'이라는 가치, 프렉스너가 중시했던 '천재과학자의 충성심'이라는 가치를 충족시키는 게 진짜 협상이다. 이를 통해 그랜트는 그가 꿈꿨던 '위대한 미국', 프렉스너는 그가 소망했던 '세계 최고 싱크탱크'라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있는가? '나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충족시킬까'부터 고민하라. 가치에 집중할 때 협상의 질은 높아진다. '이기는 협상'보다는 '성공한 협상'이 고수(高手)의 협상이다. <출처 : 조선일보>

  4. 英 수리 서비스 업체 팀슨社 팀슨 사장 본사도 없고 명령도 없는 "거꾸로 경영" "끊임없이 변하는 고객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현장 직원 관습에 매이지 않는 사람 뽑아 자유를 주고 인내 있게 기다려라" "최상의 서비스가 최고의 마케팅 손님들 입소문이 최고의 광고 850개 매장이 스스로 돌아간다 “ 147년 전 맨체스터에서 창업한 영국의 가족 기업 '팀슨(Timpson)'. 구두수선·시계수리·열쇠제작·글자새김·사진인화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장 800여곳을 운영한다. 해외 매장은 없다. 직원 2700명에 연매출 1억5000만파운드(약 2600억원). 글로벌 첨단 대기업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팀슨은 "어떤 상황이나 실패에도 재빠르게 적응하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갖춘 기업"으로 손꼽혔다. 그것도 "구글(Google)과 함께"였다.(파이낸셜타임스 시니어 칼럼니스트 팀 하포드의 저서 '어댑트')〈2012년 1월 7~8일 Weekly BIZ 참조〉 팀슨의 경영 방식은 '거꾸로 경영(upside down management)'으로 불린다. 팀슨의 매장들은 본사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 각 매장은 지역 특성, 고객 성향에 맞춰 마케팅 전략, 할인·판촉 행사, 진열 방식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한다. 갓 채용된 직원이라도 손님의 형편에 따라 수리비를 낮춰 받을 수 있다. 손님의 불만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500파운드까지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딱 두 가지다. "본분을 다할 것" 그리고 "손님에게 받은 수리비는 돈통에 넣을 것". 팀슨의 CEO 존 팀슨(John Timpson·69)은 "고객은 끝없이 변한다. 경쟁사도 마찬가지다. 중앙집중식 통제 경영으로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고객들은 한 푼이라도 싼 곳, 조금이라도 수리를 잘하는 곳으로 언제든지 옮겨간다. 본사에서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 기준을 높이는 지시를 내릴 동안 경쟁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매장 직원들이 현장에서 고객들을 바로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 팀슨이 거꾸로 경영을 하는 이유다.“ 팀슨 CEO는 "거꾸로 경영이 성공하려면 직원들부터 잘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습과 규칙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안된다. 책상에 앉아 규정이나 만들고 비용절감에만 신경써선 안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 '괴짜'라도 좋다. 이런 사람들을 채용한 뒤 신뢰와 자유를 줘라. 그들이 고객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더 좋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 CEO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거꾸로 경영이 자리잡으려면 5년이 걸릴 수도 있다." 팀슨 CEO는 그러나 "회사가 직원들에게 신뢰와 자유를 주는 만큼 책임과 의무를 지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과 나쁜 직원은 회사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제멋대로 행동하고 동료를 불편하게 만드는 직원들도 필요없다. 한 사람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사람이 없다고 일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과 타협해서는 안된다. '잘 가라(Goodbye)'고 바로 말해야 한다."

  5. Weekly BIZ가 팀슨의 CEO 존 팀슨을 지난 18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만났다. 창업 147년째 5대(代)를 이어온 가족 기업 팀슨(Timpson)의 역사는 1972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현재 팀슨의 CEO인 존 팀슨은 당시 29세 청년. 창업자 집안에 태어난 덕분에 이미 2년 넘게 이사회 임원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회사는 그럭저럭 잘 굴러갔다. 시간만 흐르면 언젠가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사를 물려받을 걸로 누구든지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해 9월에 열린 이사회가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 팀슨 CEO는 "회사의 공동 주주였던 아버지의 사촌 형제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우호(友好) 지분을 모아서 아버지를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내쫓았다. 아버지를 해고하는 안건을 상정해 의결할 때까지 90초밖에 안 걸렸다"고 말했다. 100년 넘게 오너 자리를 지켜온 집안의 후계자이던 팀슨 CEO는 한순간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공동 주주였던 친척의 쿠데타 하루아침에 아버지와 함께 쫓겨나 계열사 월급사장 맡아 경영 수업 10여년 뒤 CEO 복귀, 회사 되찾아 ◇3대(代) 못 넘긴 부잣집… 10년 만에 재기 실업자가 된 팀슨은 몇 달을 정원 가꾸기와 골프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회사는 이미 새 주인에게 팔렸다. 앞으로 계획이 전혀 없었던 존 팀슨은 어느 날 팀슨을 사들인 새 주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작은 계열사 하나를 맡아보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오너 자리에서 쫓겨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매우 화가 났다. 내 삶은 그 순간 완전히 바뀌었다. 내 나이 29세, 아버지 나이 61세였다. 아버지는 자기 삶을 바친 회사를 한순간에 잃었고, 난 내 삶을 바칠 대상을 잃었다. 난 앞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시 일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당시 난 세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사람을 믿지 말 것', 둘째는 '경영자는 회사를 100%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1%라도 허점이 있으면 경영에 실패한다. 셋째는 '만약 믿었던 사람이 날 실망시켰을 경우 놀라지 말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황태자'(오너의 아들)에서 '머슴'(월급쟁이 사장)이 됐다. "일자리를 갖게 된 것만으로 기뻤다. 처음 전화 왔을 땐 완전히 손을 떼라는 말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팀슨의 새 주인도 가족 기업 경영자였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나를 딱하게 여겼던 것이다. 당시 새 주인이 맡긴 회사는 매장 60개를 가진 의류 판매업이었다. 작은 회사지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 ―그때 어떻게 새 주인에게 인정받았나? "어느 금요일 아침, 버밍엄 뉴스트리트에 있는 매장에서 불이 나 모든 상품이 연기에 휩싸이는 피해를 봤다는 소식을 접했다. 난 2년 전, 팀슨의 윔슬로 신발 매장에 불이 났을 때 '화재 세일(Fire Sale·화재 피해를 본 상품을 싼값에 파는 것)'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6. 그래서 종업원들에게 '문을 닫고 다음 주 금요일까지 문을 열지 마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주 금요일 우리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화재 세일'을 시작했다. 그때 이틀간 매출이 그전 20주 동안의 매출보다 많았다. 주간(週間) 매출만 놓고 보면 당시 팀슨이 속한 그룹의 전체 계열사 중 가장 높았다. 이때의 성공으로 나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월급쟁이 사장 생활을 하며 CEO가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을 다 배웠다던데? "그 작은 계열사를 운영하며 각 매장을 방문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직원들에게 명령하는 것보다 설득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도 배웠다. 또한 직원들에 대해 잘 아는 것,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직원들에게 자유를 주다 급한 손님 위해서 연장 영업하고 사정 어려운 고객에겐 가격 깎아줘 모든 판단과 결정을 점원에게 일임 ◇남의 간섭 받지 않는 내 사업을 하겠다 계열사를 경영할 때 두각을 드러낸 존 팀슨은 새 주인에게 그 능력을 인정 받아 이사회에서 쫓겨난 지 2년여 만인 1975년 팀슨 임원으로 복귀했다. 1983년에는 다시 회사 지분을 사들였다. 10년 만에 잃어버렸던 회사를 되찾은 것이다. 이어 1985년 드디어 팀슨의 CEO가 됐다. ―팀슨으로는 어떻게 돌아갔나? "어느 월요일 아침, 리버풀 볼드 스트리트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팀슨의 매니징 디렉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였다. 그 순간은 정말 '마법' 같았다. 꿈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CEO로 복귀하게 된 건? "1982년 어느 날, 나와 부인 알렉스는 자선 파티에 초청을 받았다. 이때 새 주인은 내게 팀슨을 살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난 기쁘면서도 겁이 났다. 예전 기억 때문이었다. 또 잘못되면 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인 알렉스가 '당신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날 설득했다. 나 역시 알렉스의 설득에 넘어갔다. 당시 우리는 돈이 없었다. 집과 모기지 대출이 전부였다. 은행을 찾아가 설득해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 ―당신은 지분 100% 확보를 고집한다. 이유는? "1972년 아버지가 쫓겨날 때 얻은 교훈이다. CEO는 100% 지분을 장악해야 힘이 생긴다. 단 1%라도 허점이 있으면 경영권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기업 장악력도 약해진다. 우리 집안은 3대째로 내려오면서 사촌 수십명에게 지분이 다 나눠져 있었다. 아버지의 사촌은 그 나눠져있던 지분과 다른 우호적인 지분을 하나둘씩 모아 아버지를 공격했던 것이다." ―회사를 되찾은 후 팀슨의 모(母)기업인 신발 판매 분야를 팔았다. "팀슨의 시작은 신발 판매 사업이었다. 하지만 그 분야는 너무 많은 저가 브랜드가 쏟아지면서 수익이 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고객도 변했다. 신발 판매는 더 이상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87년 난 신발 판매 부문을 처분했다. 대신 신발 수선 분야를 보강했다. 회사의 뿌리에 연연하기보다 앞으로 있을 변화를 읽은 것이다."

  7. 거꾸로 경영을 하는 이유? 점원들만이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아 자유를 줬는데도 결과가 안 좋을 땐 난 그들에게 '안녕'이라고 말한다 ◇거꾸로 경영… 팀슨의 성공 우여곡절 끝에 찾은 기업이었지만 팀슨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동안의 교훈을 모두 잃고 다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경영 스타일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손님은 모두 달랐고 심지어 시간에 따라 변했다. 일정한 원칙을 점원들이 지키는 것도 어렵지만, 지킨다고 하더라도 손님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웠다. ―'거꾸로 경영'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1970년대에 난 '직원들이 해야 할 10가지 서비스 규칙'을 써서 각 매장에 내려보낸 적이 있었다. 당연히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실패를 나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약속 장소에서 손님을 기다리다가 난 미국 백화점 체인 '노드스트롬'의 책 '노드스트롬 웨이'에서 점원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을 '업사이드 다운(upside down)'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 책에서 사장은 점원들에게 어떻게 물건을 팔아야 할지 등에 대해 자율권을 줬다. 난 그때부터 '거꾸로 경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경영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좋아했겠다. "직원들은 당황했다.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 같다. 난 그래서 직접 '당신들이 놀라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내 모든 권한을 점원들에게 드립니다'라는 친필 편지를 써서 모든 매장에 보냈다. 그리고 신입 사원들까지도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최대 500파운드(약 88만원)까지 쓸 수 있는 권한을 줬다.

  8. ―그래서 마케팅 부서와 광고 부서가 없는 것인가? "물론이다. 우린 마케팅 부서도 없고, 광고에는 단 한 푼도 들이지 않는다. 영국 전역의 850개 매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객들이 우리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우리 점원들은 그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고의 서비스가 우리의 마케팅 전략이고, 서비스에 만족한 손님들이 다른 손님들에게 전하는 것이 우리의 광고 전략이다. 소문보다 더 효과가 좋은 광고는 없다." ―자유를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예를 들면 손님이 들어왔는데 영업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그는 지금 급하다. 그러면 그 점원은 손님을 위해 자유롭게 연장 영업을 할 수 있다. 한 손님은 사정이 안 좋은데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를 위해선 돈을 깎아 줄 수도 있다. 다음에 사정이 좋아지면 마저 받을 수도 있다. 특별한 손님들을 위해선 특별 개런티와 이벤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다른 손님들이 특별 대우 소식을 알면 기분 나빠하지 않겠나? "나는 룰을 지키고 싶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값을 매길 뿐이다. 손님 각자가 원하는 대로 우리는 맞춰 주는 것이다. 고객들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고객에 따라 다르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직원 수가 많은 대기업에도 '거꾸로 경영'이 적용 가능한가?(팀슨사의 전 직원은 2700여명이다) "난 그 부분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이것은 규칙이 아니다. 난 가이드를 제공할 뿐이다. 적용할지 안 할지는 그들의 자유다. 난 기본적으로 점원들을 신뢰하고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만이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유를 줬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난 그들에게 '안녕'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난 그들을 좋아한다."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꼽힌다. "우리는 직원들의 돈·가족·결혼 문제 등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꿈은 이루어진다(Dreams Come True)' 프로그램으로 꿈도 이루어준다. 이 프로그램에 최대 25만파운드를 책정해 운영한다. 한 직원은 잃어버린 친척을 찾아 호주를 다녀왔으며, 다른 직원은 딸을 위한 애완견을 사줬다. 디즈니랜드로 가족 여행을 보내주고, 중고차를 사주기도 한다. '내가 행복해야 직원도 행복하고,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다'는 생각에서다." <출처 : 조선일보>

  9. 가치관 혼재 시대에 ‘벙커’로 남지 않으려면 김영진 씨에게는 일탈의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그는 일관되게 ‘범생이’로 살았다. 집이나 학교에서 정해 놓은 규칙을 잘 지킬 뿐 아니라 공부도 잘하는 모범적인 학생의 이미지는 그 뒤로도 쭉 이어졌다. 덕분에 그는 나이 마흔이 된 지금도 바른생활 맨으로서 흐트러짐 없는 생활을 고수해 오고 있다. 그런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도 컸다. 주변에서도 그의 고지식한 원리원칙주의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아마도 그가 좀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그 시절의 버전으로 ‘대쪽’이란 별명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옛말(?)이 잘 쓰이지 않는 요즘, 그는 ‘대쪽’ 대신 ‘벙커’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대쪽’과 ‘벙커’라는 두 단어만큼 서로 조합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바로 거기에 김영진 씨의 문제가 숨어 있었다. 그가 ‘벙커’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 ‘대쪽’은 예로부터 자신의 가치관에 위배되는 것이면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기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적어도 진정한 군자나 선비라면 ‘대쪽 같은 성품’ 정도는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아래위로 두터운 신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도 그런 기개를 지닌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그에게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보낸다. 다만 그런 사람이 흔치 않을 뿐이다. 선비의 기개까지는 아니어도 성실하고 고지식하게 원리원칙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온갖 종류의 내 맘대로 식 가치관이 요동치는 세상에서 그건 보기 드문 장점일 수 있다. 그런데 김영진 씨는 왜 벙커라는 별명으로 불려야 했을까? 문제는 그가 자신의 시각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데 있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바른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이라는 그의 의식 속에는 똑같은 무게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옳은 사람’이란 생각이 고착돼 있었다. 바로 ‘난 옳은 사람’이란 생각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난 옳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 옳았다. 뭐, 거기까지도 사실 나쁠 건 없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든 다 내 마음이니까. 더욱이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올바르고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란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가끔은 적당히 타협할 때가 없진 않지만 이래봬도 근본은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참을성도 없고 잘 삐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난 분명 본성은 착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물론 때때로 거짓말을 하고 위선을 떨 때가 없진 않지만 이 세상에 나만큼도 그런 짓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적어도 나 정도면 대단히 정직한 축에 든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실험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천국에 간다면 과연 누가 가장 먼저 갈 수 있을까’란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대답은 이랬다. 테레사 수녀가 3위, 오프라 윈프리가 2위, 1위는 당연히 ‘나’였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조사에 응한 사람들 중 무려 87%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 이유는 물론 “내가 가장 착하니까”였다. 사람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정도의 자기 확신마저 없다면 우리가 어찌 이 험한 세상을 이만큼이나마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보면 김영진 씨의 경우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누구보다도 스스로 보기에 옳다고 여겨지는 바른생활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10. 따라서 자신이 세상을 보는 시각은 전적으로 올바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것을 혼자 간직하지 않은 것은 그의 실수였다. 특히나 요즘처럼 온갖 종류의 가치관이 혼재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먼저 가족들 사이에서 균열이 생겨났다. 결혼생활이 10년째로 접어들면서 그의 아내는 이미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자신은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라는 굳건한 신념 아래 그는 살림살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면서 이건 이래서 틀렸고 저건 저래서 틀렸다고 지적하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견디지 못한 아내가 저항하자 그는 오히려 그런 아내를 이해할 수 없어 했다. 아니, 내가 지금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제대로 좀 하자는데 그걸 못 견뎌 사네 마네 하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나마 어린 두 아들은 아직까지는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 같아 위안이 됐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좀 더 다잡아 두려는 생각에서 작은 잘못에도 매를 들곤 했다. 그것도 아내를 분노하게 하는 일 중의 하나였지만 그는 그런 사고방식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부서의 팀장인 그는 리더십에 대해서도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자신의 바른 생각과 바른 생활이면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옳고 선한 사람이라는 그의 생각은 회사에서도 적잖은 문제를 일으켰다. 앞에도 언급했듯이 그런 생각을 혼자서만 간직하면 상관없다. 그런데 그는 평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이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잣대를 가지고 있었고 기회만 있으면 그것을 모두에게 주지시키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팀원들은 하나같이 그가 ‘절대논리로 무장한 독선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자기와 의견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은 가차없이 형편없는 인간으로 매도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나만의 올바른 시각’을 남에게도 강요했다. 반발이 따르는 것이 당연했다. 일을 할 때도 그는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일 처리 방식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론 그는 자기는 단지 원칙대로 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팀원들이 보기에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상사일 뿐이었다. 그것도 자기만의 편견과 흑백논리로 가득 찬. 그래서 결국 그는 ‘벙커’란 별명을 갖게 된 것이었다. 알다시피 벙커는 골프장 코스 중 모래가 들어 있는 우묵한 곳을 가리키는 용어다. 골프 공이 벙커에 빠지면 쉽게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 선수들도 애를 먹을 때가 적지 않다. 그런 것처럼 일단 나는 옳고 세상은 그런 내 말을 들어 줘야 한다는 김영진 씨의 절대 논리야말로 벙커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한번 그의 그런 주장에 걸려들면 웬만해서는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11.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낫지 않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연애가 불행하게 끝난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연애가 다 쓰라리고 애달프게 여겨지듯이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을,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을, 상처를 주는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겪은 것,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만이 나를 이루는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때로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 프랑소아즈 돌토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 버린 것들을 자신의 내면에서 다시 찾는 순간 성장한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주장하지만 어느 순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모르는 생의 이면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한다. 김영진 씨처럼 인간관계에서 벙커가 되지 않으려면 늘 열린 시각,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유머 감각을 키우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유머 감각이란 게 타고난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순발력도 노력하고 훈련하면 나아질 수 있다. 나는 올바르고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도를 넘어 흑백논리로만 세상과 다른 사람을 재단하기만 해서는 순발력도 유머 감각도 생겨날 여지가 없다. 편협하고 독선적인 사람은 자신이 농담의 대상이 되는 걸 못 견뎌 한다. 하지만 유머 감각이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열린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만이 그런 유머를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인간관계에서 파스텔 색조를 보는 것이다. 우린 무지개가 일곱 색깔로 돼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컴퓨터로 분석해 보면 무지개 속에는 수많은 색깔이 들어 있다고 한다. 우리 개인이나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낫지 않다”는 말이 있다. 나만 올바르고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칫 독선과 오만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새해에는 먼저 나부터 마음에 새겨둬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출처 : 동아비즈니스리뷰>

  12. 소통하는 SNS 넘어 유통하는 SNS로 `’좋아요’` 에서 끝나지 말고 `’살래요’` 로 고객 이끌어라 `’게임스톱’` 페이스북 비즈니스 모델, 온·오프 채널 시너지로 고객 잡아 2011년 4월 7일,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글로벌 유통기업인 게임스톱(GameStop)은 페이스북(Facebook) 페이지에 점포를 개설했다. 오프라인 점포, 웹사이트에 이어 새로운 채널로 점포를 확장한 것이다. 이 소식은 페이스북이 포스트 및 친구찾기 기능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전문가들은 게임스톱이 자사의 고객인 게이머들에게 기존 채널과 페이스북 점포와의 시너지를 제공해 고객경험(customer experience)을 극대화했다고 호평했다. 최근 모바일과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기존의 점포, 웹사이트, 카탈로그에 새로운 채널들이 더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이들 새로운 채널을 통해 판매기회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주로 신규고객 확보, 매출액 증대에만 관심을 가질 뿐 채널 간 시너지를 높이고자 하는 노력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쏟는다. 개별 채널 중심적인 조직 및 관리, 매출 중심적인 성과평가, 데이터 통합의 부족 등은 기업의 채널 간 시너지를 제한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단순히 보유채널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채널 간 시너지를 통해 호의적인 고객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경쟁자들이 모방하기 힘든 차별화된 경쟁우위를 획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소개한 게임스톱이다. 게임스톱은 엑스박스(Xbox), 플레이스테이션, 위(Wii)를 통해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을 제공하는 업체다. 페이스북 상의 게임스톱 페이지. 이곳에서 고객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제품을 평가하며 게임을 다운로드 받기도 한다. 소비자들이 중고 게임타이틀을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소비자가 중고 게임 소프트웨어를 게임스톱에 판매하는 경우 `크레딧(credit)`을 적립하거나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다. 이 회사는 2004년 반스앤드노블에서 분사돼 비디오게임 소프트웨어를 오프라인 점포에서 판매하면서 성장했다. 2012년 초 현재 점포수는 6670개에 달한다. 2009년 이후에는 웹사이트를 통해 디지털 게임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스톱은 페이스북에 온라인 점포를 설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작업은 기존 채널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우선 표적고객인 게이머, 충성고객인 800만 `파워업(PowerUp)` 멤버십 고객, 180만 페이스북 팬들의 게임구매 결정과정과 선호채널에 대해 검토했다. 그리고 게임스톱 채널 안에서 신작 출시 정보와 소비자들의 제품 리뷰, 평가, 추천 관련 정보가 효과적으로 공유되도록 했다.

  13. 오프라인 점포와의 시너지를 위해 오프라인 점포 안에 키오스크(kiosk)를 설치했다. 오프라인 점포 안에서 상품 카탈로그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공유하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원하는 제품을 구매하게끔 하는 한편, 페이스북의 온라인 점포를 프로모션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뒀다. 또한 정보공유가 구매로 이어지도록 페이스북 점포에서 선주문(pre-order)을 하고 오프라인 점포에서 상품을 받아갈 수 있도록 했다. 용량이 작은 게임의 경우 페이스북 채널에서 직접 다운로드 구매가 가능하게 했고, 용량이 큰 비디오게임 소프트웨어는 페이스북 점포에서 오프라인 점포의 재고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소비자가 페이스북을 하는 위치에서 인접한 오프라인 점포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능도 페이스북 점포 안에 추가했다. 오프라인 점포와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구축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게임스톱의 `온라인을 통한 점포 재고현황 파악`과 `우편번호에 의한 인접 3개 점포 제시 기능`을 통해 구하기 어려운 중고 게임 소프트웨어를 편리하게 교환할 수 있게 됐다. 게임스톱의 페이스북 점포는 게임소비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존 채널과 새로운 채널의 시너지 효과가 높아지도록 설계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게임스톱이 이처럼 온라인 점포와 오프라인 점포의 연계를 꾀한 것은 페이스북 점포에서 정보를 얻은 소비자가 오프라인 점포에서 추가로 구매하게 되면 단순히 채널 수가 증가한 비율 이상으로 매출액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온라인 비즈니스 컨설팅업체 `Shop.org`가 2010년에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가전제품의 경우 정보탐색 과정에서 방문했던 웹사이트의 오프라인 점포에서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 비율은 8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오프라인 점포와 온라인 웹사이트가 효과적으로 통합되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경우 고객충성도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의 여러 채널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한 가지 채널만 이용하는 소비자에 비해 우량고객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정보탐색과 구매가 기업이 보유한 채널 안에서 효과적으로 이뤄지게 하면, 다른 기업의 채널로 옮겨가면서 판매기회가 상실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추가판매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구매 이후 교환 및 환불 과정에서도 채널 간 시너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네슬린(Scott Neslin) 교수는 채널 간 통합에 대한 연구에서 `오프라인 점포에서 판매한 제품을 온라인 채널을 통해 교환 받을 수 있게 하면 매출액이 20% 증가한다`고 밝혔다. 고객 관점에서 채널들의 융합(convergence)을 실천해 오고 있는 게임스톱은 할리 데이비드슨과 미국 내 순추천지수(NPSㆍNet Promoter Score) 순위에서 선두 경쟁을 할 정도로 고객 충성도가 높다.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한국 기업들은 게임스톱의 다채널 마케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출처 : 매일경제>

  14. 일본은 '직장인 왕따' 대책… 한국은 '왕따 직장인' 해고 한국 기업들, 직장내 집단 따돌림 문제의식 없어 야근 불참, 他대학 나왔다고 영업 인센티브 안 주거나 중요정보 안 줘 '물' 먹이기도 외국계 IT기업에 근무하는 A대리는 최근 부서 회식에서 모두 열외됐다. 부원이 10여명인데 그는 늘 혼자 밥을 먹는다. 개인사정 때문에 야근을 몇 차례 빠졌다는 게 왕따 이유다. 부장은 "누구는 야근을 하고 싶어서 하느냐. 다들 고생하는데 조직생활의 기본이 안 돼 있다"며 "당신은 회식에 안 와도 괜찮으니 자유롭게 개인 시간을 가져라"고 말했다. A대리는 "일과시간에도 다른 부원들이 부장 눈치를 보면서 나와 얘기하는 것조차 피한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회사 측에 부서 이동을 요청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직할 계획이다.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왕따(집단따돌림) 현상이 심각하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올 초 직장인 2975명에게 '재직 중인 직장에 왕따 문제가 있느냐?'고 물은 결과 전체의 45%가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8.3%는 '왕따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퇴사한 직원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 내 왕따 문제 심각 직장 내 왕따 유형은 다양하다. 가장 많은 사례는 부서장·팀장 등 간부가 특정인을 찍어서 부하직원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괴롭히는 것. 서울지역 보험사 지점에 근무하는 이모(38)씨는 작년에 "우리 지점장은 게으르고 본받을 게 없다"고 험담을 하다가 지점장에게 들켰다. 이씨는 "그날 이후로 영업 인센티브(장려금)를 안 주거나 계약 진행상황, 회의시간 변경 등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서 '물'을 먹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여러 사람이 동료 1명을 왕따시키는 경우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B(39)씨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지난 2004년 모교 교수로 임용됐다. 하지만 당시 그 학과 교수 7명 중 자신과 또 다른 교수를 뺀 5명은 서울 명문대의 같은 학과 선후배들이었다. 사석에서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교수들 사이에 B씨가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2008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B씨는 "같은 대학 출신을 끌어주고 당겨주는 풍토에서 다른 대학 출신인 나는 배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B씨는 학교를 상대로 재임용 탈락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벌이고 있다. 부하 직원들이 짜고 부서장을 따돌리는 경우도 있다. 제조업체 출신인 K씨(45)는 작년 초 한 금융회사의 마케팅팀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외부인 영입을 못마땅하게 여긴 팀원들은 팀장 밑의 차석(次席)에게만 업무보고를 했다. 회의도 자기들끼리 따로 했다. 3개월 뒤 다면(多面) 인사평가에서 팀원들은 담합해서 K씨에게 최악의 점수를 줬다.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한다' '팀장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내린 것. 결국 K씨는 1년을 못 버티고 작년 말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었다.

  15. ◇선진국기업은 왕따방지교육 의무화 직장 내 왕따가 만연한데도 한국 기업들은 큰 문제의식이 없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의무화돼 있지만, 집단 괴롭힘에 대해서는 법적인 의무가 없다. 오히려 "조직 분위기를 흐린다"며 따돌림을 당한 직원을 해고하는 경우도 있다. 유럽·미국 등 선진국 기업은 다르다. 프랑스·스웨덴·벨기에 등은 1990년대에 기업이 집단괴롭힘을 방지해야 할 의무가 법제화돼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 자동차는 1996년 맺은 노사 단체협약에서 "집단괴롭힘·성희롱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폭력"이라며 "경영진은 집단 괴롭힘이 발생하면 즉시 이에 개입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출처 : 조선일보>

  16. LG전자, 시트콤으로 직원간 소통문화 확산 LG전자 직원들이 제작하는 시트콤 '미스터 우짜꼬' (창원=연합뉴스) 김영만 기자 = LG전자 창원2공장 직원들이 사내 소통문화의 확산을 위해 제작하는 시트콤 '미스터 우짜꼬'의 한 장면. 이 시트콤은 지난 9월부터 이달까지 3차례 방영됐으며, 앞으로 7회 정도 더 제작 방영될 예정이다. 에어컨을 생산하는 LG전자 창원2공장이 짤막한 시트콤을 만들어 방영해 직원들간 소통문화의 확산에 나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30일 LG전자에 따르면 직원 6명이 직접 출연해 만드는 이 시트콤의 이름은 '미스터 우짜꼬'다. '우짜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고민할 때 쓰는 경상도 사투리다. 5분짜리인 시트콤은 지난 9월부터 3차례 제작돼 사내 인터넷 사이트, 구내 식당 전광판 등을 통해 직원들에게 방영됐다. 지난 9월 첫 회에는 주말 가족여행과 회사 모임ㆍ회식이 겹쳤을 때 직원이 갈등하는 것을 주제로 만들었다. 10월 두 번째에는 회사 내 설문조사를 할 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실제 속마음과 달리 미화해 응답하는 경우를 코믹하게 다뤘다. 이달에 방영된 시트콤은 연구실적과 출장교육을 놓고 고민하는 연구원에 초점을 맞춰 제작됐다. 시트콤의 특징은 양자 택일의 기로에 놓였을 때 갈등하거나 고민하는 모습만 보여주지 결론을 내지는 않는 것이라고 회사 측은 말했다. 시트콤을 보는 직원들이 상사와 부하 직원간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도록 해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이다. 시트콤의 '양 대리' 주인공역을 맡은 양승혁(32ㆍ환경안전그룹) 대리는 "어쩌다 주관 부서의 추천에 의해 발탁됐는데, 우유부단하고 결정을 잘 내리는 못하는 캐릭터를 소화하느라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7. 그는 "시트콤을 제작하기 전에 주관 부서에서 만든 대본을 보고 다른 사내 배우들과 함께 빈 회의실에 모여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며 "많은 직원들이 좋은 반응과 함께 격려를 해줘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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