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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champeople.or.kr. 참개혁시민회의 제 13 회 역사기행. 1894 년 농민전쟁 의 배경 및 전개과정. 2001. 8. 18. 참개혁시민회의 역사기행팀. www.champeople.or.kr. 글싣는 순서. Ⅰ. 개항기 사회경제적 변화와 농민항쟁 Ⅱ. 농민전쟁의 전개과정 Ⅲ. 농민전쟁의 의의 및 영향. www.champeople.or.kr. Ⅰ. 개항기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농민항쟁. 1. 개항기의 국내외 정세 2. 개항기 농촌경제의 변동 3. 개항기 농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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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ww.champeople.or.kr 참개혁시민회의 제 13 회 역사기행 1894년 농민전쟁의 배경 및 전개과정 2001. 8. 18 참개혁시민회의 역사기행팀

  2. www.champeople.or.kr 글싣는 순서 Ⅰ.개항기 사회경제적 변화와 농민항쟁 Ⅱ.농민전쟁의 전개과정 Ⅲ.농민전쟁의 의의 및 영향

  3. www.champeople.or.kr Ⅰ.개항기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농민항쟁 1. 개항기의 국내외 정세 2. 개항기 농촌경제의 변동 3. 개항기 농민의 삶 4. 19세기 농민들의 반봉건 투쟁 5. 반봉건적 민중사상의 태동과 동학의 등장

  4. 1. 개항기의 국내외 정세 www.champeople.or.kr 1876년 조선의 개항 < 강화도에서 무력시위하는 이양선 > < 강화도조약의 체결 >

  5. www.champeople.or.kr 개항기 정치세력의 변화 민씨 독재정권 김홍집 친일내각 대원군의 개혁정치 급진 개화당

  6. 2. 개항기 농촌경제의 변동 www.champeople.or.kr 곡물의 상품화와 지주제의 강화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쌀의 상품화 - 조선후기 전국적인 곡물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대상인이 출현 - 개항장을 중심으로 쌀수출 시작 개항으로 인한 미곡무역의 폭발적 증가 - 일본은 산업의 발달로 1880년대 이후 쌀수요 부족 → 1900년부터 쌀수입국으로 전락 조선쌀을 수입하여 공장노동자에게 값싼 미곡을 공급 → 자본주의 발전 촉진 - 1885년 <<조선국내지여행취제규칙>>에 따라 일본상인들의 내지행상이 허용 → 유통장악 - 1895년을 경계로 수출입액 2~3배 증가, 갑오개혁 이후 폭발적 증가 (지세의 금납화) 지주제의 강화 - 쌀이 부의 축적수단이 됨에 따라 소작경영을 더욱 강화하고자 함. - 매점매석과 시세차익 등을 통한 대규모 부의 축적 - 사창, 고리대 등을 통한 토지수탈 강화

  7. www.champeople.or.kr ※ 지주계층의 분화와 계층별 이해관계 권귀지주 (權貴地主) 왕족, 왕족과 연계된 노론일파, 일부 실무관료 - 권력을 이용한 대규모 토지 집적 - 토지의 근대적 소유법 제정 요구, 식민지 권력에 적극 동참 호부가지주 (豪富家地主) 지방의 토착적 사족 혹은 토호, 향임층 - 정상, 비정상적(늑매, 늑탈)인 방법을 통한 토지 겸병 - 개항장과 미곡유통을 끼고 대지주로 급부상 - 농민전쟁기 반농민군 지원, 1910년 이후 식민지지주로 급부상 서민지주 (庶民 地主) 새로운 지주층 - 상업,고리대로 축적한 자본으로 토지 매득 - 개항이후 1920년대에 걸쳐 형성 - 농민전쟁기 반농민군 지원 일본인 지주 1900년 이후 자유로운 내한과 부동산 점유 기도 - 1904년 황무지 개척권 반대 투쟁등 소작인의 격력한 반대에 봉착 - 1908년 탁지부령에 의해 소작권 축소 → 지주권 강화 개항기 부산초량 일인 거주지

  8. www.champeople.or.kr 삼정 착취의 강화 전정 착취 조세 인상과 부가세를 통한 착취의 강화 - 소작료 인상과 세금의 소작농 전가 - 각종 부가세(지방관 및 토호들의 사치비 등)의 증가 - 전체 수확량의 7~80%를 착취 군정 착취 신분제의 동요 → 군정 대상자의 축소 → 농민 착취 집중 - 백골징포, 황구징포, 인징, 족징 등의 부패상 만연 - 탐관오리의 농간으로 인해 부담 더욱 가중 – 1호당 6,7명의 군포 수탈 환정 착취 빈민구제를 위한 환곡이 착취수단으로 변질 - 쌀의 상품화로 지방관 및 향리들의 축재 수단으로 악용됨 - 허류(虛留), 암류(暗留), 반백(半白), 이포(吏逋) 등 부패상 만연 - 가장 심한 부패상으로 1862년 농민항쟁의 주요 원인이 됨

  9. 3. 개항기 농민의 삶 www.champeople.or.kr 1. 추수기에 이르러 대부분의 농민은 수확량의 7할 이상을 소작료로 납부해 겨우 2~3개월을 연명할 곡식만 남게 됨. 이마저도 생활필수품을 사기 위해 일부를 헐값에 매도함. 2. 동지가 오기 전에 쌀이 떨어지게 되자 울며 겨자먹기로 환곡을 곡식을 꾸게 되나 이마저도 탐관오리의 농간으로 터무니 없는 이자에 꾸게 됨. (중간에 지방관이 빼돌린 환곡까지 부담) 환곡이 필요 없어도 억지로 할당해 떠넘기게 됨. 환곡이 떨어지면 고리대의 사창에서 쌀을 다시 꾸고 고리대에서 급전을 융통해 보았으나 이미 춘궁기라 쌀값은 이미 천정부지… 3. 봄에 이르러 1~2인분만 내도 될 군포를 죽은 아버지나 젖먹이 어린애, 도망간 이웃집까지 합쳐 6~7인분을 내야 함. 반항하면 어김없이 옥이 갇히거나 몽둥이 세례… 4. 이런 일이 몇년간 지속되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이자에 결국 땅을 지주에게 빼앗기게 됨. 5. 이제 남은 일은 죽거나 혹은 도망가거나……결국 고향을 등지고 한양 등 도시로 와 빈민 굴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게 됨. 이도 싫은 사람은 도적떼가 될 수 밖에… 6. 그런데 왜 양반놈들은 쌀한톨, 베 한필 내는 법이 없을까?

  10. www.champeople.or.kr 애절양(哀絶陽) --丁若鏞 갈밭마을 젊은 부인 울음소리 길고 긴데 / 현문을 향해 통곡하고 하늘보고 울부짓네 / 군인나간 남편 돌아오지 않음은 혹 있으나 / 예부터 남절양은 들 어보지 못했네 / 시아버지 삼년상은 끝난지 오래고 / 갓난 아이는 아직 배냇 물도 아니 가셨는데 / 삼대 이름이 군적에 실리다니 / 내 달려가 호소하재도 관가의 문지기 호랑이 같더라 / 이정놈의 호통소리에 외양간 단벌소만 끌려 가누나// 그는 문득 칼을 갈아 방안으로 뛰어드니 시뻘건 피가 방안에 가 득 / 어저버 환난은 아이 낳은 죄로고 /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 까던 형벌도 지나친 일이고 / 민땅 자식 거세함도 애달픈 일이거든 / 자식 낳고 딸 낳 는건 사람사는 도릴세라 / 말돼지 거세함도 가엾다 이르는데 / 하물며 뒤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 부자들은 한평생 풍악이나 즐기며 한알쌀, 한치베도 바치는 일 없다네 / 다같이 나라의 백성이어나 / 어찌 이다지도 고르지 못하 단 말인가? / 객창에 우두커니 서서 시구편을 내내 읆어 보노라

  11. 4. 19세기 농민들의 반봉건 투쟁 www.champeople.or.kr 1811년 관서농민전쟁 (홍경래의 난)의 발생 - 사상(私商)과 몰락양반이 연합해 봉기 10여일만에 의주~청천강 일대 장악 - 평안도 지역 차별 철폐, 부정부패 척결 주장 - 평양을 접수하고 한양으로 진격하고자 했으나 관군에 패한후 정주성에서 4개월 농성 정주성 점령후 정부는 생존자 3,000명중 2,000명을 즉결 처형 - 민란의 한계를 벗어나 전쟁의 수준으로 발전 (농민투쟁사의 일대 전기 마련) - 이후 “홍경래 생존설”과 홍경래를 자처하는 민란이 곳곳에서 발생 1862년 전국적인 농민항쟁 (임술농민항쟁) 발발 - 단성에서 시작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남부지방 3~5월 집중 발생 경상도 지역 진주, 상주 등 16곳에서 발생 전라도 지역 익산, 고창 등 30곳에서 발생 충청도 지역 회덕, 진천 등 12곳에서 발생, 가장 지속적인 항쟁 - 경기도, 함경도, 황해도, 제주도 등은 10~12월경 집중 발생 - 전세의 인하와 환곡폐단 시정, 탐관오리 처단을 요구

  12. www.champeople.or.kr 1882년 임오군란 발생 - 구식군인에 대한 철폐를 주장하며 폭동 - 민씨 고위관료집과 일본 영사관 공격, 대궐난입 - 도시빈민층의 적극 지지 도심 장악 - 민비세력 축출, 대원군 정권 재장악 - 청군 출동, 대원군 납치, 對청군 무력항쟁 돌입 - 근거지인 왕십리, 이태원 일대 초토화 1879년 울산에서 민란 발생 (아전들의 착취에 항의, 관아 습격, 죄수 방면) 1880년 황해도 장련, 1883년 동래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봉기 발생 성산,여주,원주,북청,정선,인제,광양,함흥 매년 같은 유형의 봉기 발생 1893년 한해 전국 65곳에서 대대적 민란이 발생 봉건정부의 부패한 타락정치로 수습능력 상실

  13. 5. 반봉건적 민중사상의 태동과 동학의 등장 www.champeople.or.kr 정감록의 도참사상 미륵출현 사상 주역의 후천개벽설 관서농민전쟁의 격문 손화중과 선운사 미륵불 1860년 최제우가 “서학”에 대응한다는 의미의 “동학” 창시 무위이화(無爲而化)라는 순환운동론과 기(氣)를 자신의 몸속에 영원히 모셔 [시천주(侍天主)] 하날님과 하나가 되는 이른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핵심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 창시자 최제우 2대 교주 최시형

  14. www.champeople.or.kr Ⅱ.농민전쟁의 전개과정 1. 척왜양 운동의 전개 2. 고부봉기와 1차 기병 3. 전주화약과 집강소 통치 시기 4. 2차 기병과 전쟁의 패배

  15. 1. 척왜양 운동의 전개 www.champeople.or.kr 1890년대 들어 호서남 지방에서는 동학신도수가 급속하게 늘고 있었고 이를 계기로 지방관 들은 동학은 사술(邪術)이라며 교도들을 잡아들이거나 재산을 빼았는 행위가 만연하였다. 1892년 10월 공주집회 - 남접계 서인주, 서병학이 최제우의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공주에서 집회 개최 - 충청감사 조병식에게 탄원 → 탄압중지 약속으로 해산했으나 관의 미온적 자세에 격분 1892년 11월 삼례집회 - 관의 미온적 자세에 북접계 최시형 참여, 전라감사 해산 종용 - 북접교단는 해산했으나 수천군중은 전주로 몰려가 관리와 토호의 탐학을 호소하면서 농성 1892년 12월 보은집회 - 남접계 11월 북접계에게 한양 궁궐앞 복합상소 제의 - 군중들 보은집회에서 즉각적인 상경을 주장하는 바람에 북접계 추진을 약속하고 해산 - 북접계의 교조신원 운동과 남접계의 민씨정부 타도의 이해가 본격적으로 엇갈리기 시작함

  16. www.champeople.or.kr 1893년 2월 8일 복합상소 전개 - 서병학 등 남접계는 2월1일 상경 거사를 준비하며 교인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대병케 함 - 북접계 남접계의 행동에 당황 2월11일 손병희 등이 복합상소 전개 - 복합상소 진행중 남접계는 척왜양의 괘서를 거리에 게시 미국인 교회당, 프랑스공사관, 일본공사관 등에 3월7일 공격을 경고하는 괘서 부착 - 전봉준은 삼례에서 수만명을 서울로 보내는 역할을 수행 - 3월7일 총공격 불발, 3월6일 부산성문, 3월11일 충청 청산에 척왜양 괘서 사건 발생 손병희 1893년 3월 삼남집회 - 보은, 원평, 밀양 등에서 교조신원 운동과 포교허락을 위해 삼남집회 개최 - 원평집회 전봉준 계열의 주도로 인천 진격을 결의 손화중 휘하의 1만명을 보은집회에 참여시킴 - 남접계의 노력으로 보은집회는 척왜양 운동으로 급속 발전 - 최시형은 선무사 어윤중과 타협 보은집회 해산을 지시 → 격분한 보은집회 군중 교단지도부 타도 기도 → 최시형, 손병희 야반도주 - 보은집회의 해산으로 서울 진격계획 무산됨.

  17. 2. 고부봉기와 1차 기병 www.champeople.or.kr 고부봉기 고부땅의 풍요로움과 착취의 집중 - 동진강 등 5개의 하천으로 배들평야등 7개 평야 형성 - 서해안의 풍부한 해산물 등 물산 풍부 - 미곡항인 줄포항에 인접, 지방관의 착취 집중 조병갑의 탐욕상 - 만석보 밑에 새로운 보를 쌓으면서 농민 사역 동원 - 공사과정에서 남의 산의 나무를 마음대로 벌목 - 수세로 쌀 700가마 착취 - 부친인 태인군수 선정비 건립비용 1천냥 착취 - 억울한 누명을 만들어 2만냥 착취 - 대동미 징수과정에서 부당한 수수료 착취 등 < 만석보 >

  18. www.champeople.or.kr 1, 2차 등소와 합법운동의 한계 절감 전봉준을 중심으로 사발통문 발송 1893년 11월 조병갑 익산군수로 발령이 났으나 공작을 통해 1894년 1월9일 고부군수로 재부임 1894년 1월 10일 말목장터에 집결 고부관아 점령하고 백산에 진을 침 조병갑 탄핵, 신임군수 박원명의 유화책에 농민군 3월 해산 (민란의 한계에서 못벗어남) 안핵사 이용태 조병갑을 비호하고 농민을 탄압하 면서 치부를 계속함. < 사발통문 > 1. 고부성을 혁파하고 조병갑을 효수할 것 2.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3. 군수에게 빌붙어 인민을 탐학한 탐리를 징치할 것 4. 전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향할 것.

  19. www.champeople.or.kr 무장 기포와 고부성 점령 대 장 : 전봉준 총관령 : 손화중 , 김개남 총참모 : 김덕령 , 오시영 영솔장 : 최경선 비 서 : 송희옥, 정백현 < 무장현 진무루 > 손화중포 (고창, 무장 등) 4,700명 김개남포 (태인) 1,300명 김덕명포 (김제, 금구) 2,000명 합 계 8,000명 < 백산에 진을 친 농민군 >

  20. www.champeople.or.kr 홍계훈의 경군 1894. 4. 5 1차 기병의 전개 과정 논산 군산 임피 이리 무장기병 (3.20) 고부점령 (3.23) 황토현 전투 (4.7) 장성 황룡촌전투 (4.23) 전주성 점령 (4.27) 삼례 전주 백산 원평 부안 황토현 태인 고부 황헌주 증원군 1894. 4. 23 흥덕 정주 무장 고창 법성포 남원 장성 순창 영광 농민군 1차진격 광주 농민군 2차진격 감영군 함평 경군 나주 1차기병 당시 진격로 < 당시 농민군 모습 >

  21. 3. 전주화약과 집강소 통치 www.champeople.or.kr 전주화약(5. 6)의 배경 - 수차례 전투에서 농민군 피해 큼 - 농번기로 농민군 이탈 증가 - 청군 5.5 아산만 도착, 일군 출동 - 청일군의 조선주둔에 대한 부담감 폐정개혁안 27개조 합의 전라감사 김학진과의 제휴를 통한 집강소 통치 (운봉, 나주를 제외한 전라전역 통치) < 집강소 통치기의 전봉준 >

  22. www.champeople.or.kr 폐정개혁 27개조의 주요 내용 1. 도인과 정부 사이에는 묵을 감정을 씻는다 2. 탐관오리의 죄목을 조사하고 엄징할 것 3. 횡포한 부호들을 엄징할 것 4. 불량한 유림과 양반들을 징벌할 것 5. 노비문서는 태워버릴 것 6. 7반천인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의 평량립을 없앤다 7. 청춘과부의 재혼을 허락할 것 8. 무명잡세는 모두 폐지할 것 9. 관리채용은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위주로 육성 10. 외적과 내통한자는 엄징할 것 11. 공사채를 막론하고 지난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 12.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하게 할 것

  23. 4. 2차 기병과 전쟁의 패배 www.champeople.or.kr 정세의 변동과 삼례 봉기 청일전쟁의 발발과 일본의 공작 - 6. 21 일본 경복궁 침입, 친일내각 구성 - 6. 23 풍도해전 도발, 7.1 청에 선전포고 - 낭인을 동원 농민군의 재기병을 충동질 집강소 통치의 어려움과 동요하는 농민, 지도부의 분열상 - 일부지역 집강소 통제권 상실 - 7. 1 최제우 재림설 파다 2차 기병설로 농민군 동요 - 김개남의 독자노선과 북접계의 남접계 공격 움직임 - 7.15 남원집회를 계기로 농민의 동요와 지도부의 분열을 극복 9월12일 보국안민을 기치로 삼레에서 봉기 (전봉준 직속의 4천명참여) 고창,태인,남원,금구,무장 등에서도 봉기 (총10만명 동원) 충청도,경상도,경기도,강원도,황해도 등 전국적 봉기 발생

  24. www.champeople.or.kr 농민군의 북진과 공주대회전 남접농민군 10월 중순 영동/옥천, 논산으로 북진 손병희의 북접군도 논산에 집결 북접군 10.23 이인 전투에서 승리 관군 10.24,27 일군 10.29 공주 도착 (관군 3천, 일군 2천 집결) 10.25 곰티전투에서 패배 논산으로 후퇴 4만 농민군 11.8 우금치 총공세, 대패 11월 25 원평,태인 전투 반격 실패/해산 12.10 장흥 전투에서 패배/전쟁 소멸 우금치 공주기념비 이규태, 이두황가 이끄는 관군과 일본군의 잔혹한 소탕전 (전라,충청에서 3~40만 피해민 발생) <효수된 농민군지도자>

  25. www.champeople.or.kr 다른 지역의 전투 김개남은 11.11 금산방향에서 진잠을 공격하고 전병력으로 청주를 공략했으나 패배함 11.13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에 밀려 신탄진 방면으로 후퇴 공주방면으로 퇴각 강경에서 전봉준군과 만나 태인전투 수행 12.27태인 매부의 집에서 체포됨 체포된 농민군 11.12 최시형이 이끄는 북접군 2만 순창에 집결 청주 방면으로 북상 청주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우회하다 충주부근에서 관군에 대패 강원도로 도주 사로잡힌 최경선 패주하는 호서농민군 손화중/최경선 부대로 집결 영광, 장성 등지에 진을 침 관군의 광주 공격과 11.21 일군의 법성포 상륙으로 전세가 기울자 순창으로 도피/체포

  26. www.champeople.or.kr 전봉준의 재기계획과 체포 11월말 백양사에 은신하면서 손화중, 최경선, 김개남과의 연락 시도 서울 방어에 문제가 있음을 간파하고 직속부대 에게 잠입을 지시하고 순창에 들어감. 12월 2일 옛부하 김경천의 집에 머물다 포상금에 눈이 먼 김경천이 밀고하는 바람에 체포됨. 서울로 압송후 일본영사관과 법무창에서 모진 고문과 함께 취조를 받음 목숨을 흥정하는 일제를 거부함. 3.29일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 집행 때를 만나서는 천하도 힘을 합하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이 무슨 허물이랴?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27. www.champeople.or.kr Ⅱ.농민전쟁의 의의 및 영향 1. 전쟁의 패배 원인과 성과 2. 농민전쟁의 의의 3. 이후 민족운동에 미친 영향

  28. 1. 전쟁의 패배 원인과 성과 www.champeople.or.kr 전쟁 패배의 원인 -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에 당하지 못함. - 농민으로 구성된 비정규군과 최신무기로 무장한 정규군 과의 전쟁 - 전주성 점령후 북진 계획이 지연됨. (공주지역을 선점하지 못함으로써 전략적 우위 상실) - 농민군의 내부의 분열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함. (김개남의 독자노선 등) 남원 교룡산성 농민전쟁의 성과 - 조선 봉건왕조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 - 전쟁을 통해 봉건권려을 차단하고 농민권력의 집행과 재분배 경험 - 권력 상층부를 압박 개혁의 속도를 높힘. → 갑오개혁 등 개혁정치 일부 실현 - 통치체제의 변화 강요 민씨 독재권력의 붕괴 탐관오리의 숙청 → 김홍집 중심의 친일내각 구성

  29. 2. 전쟁의 의의와 한계 www.champeople.or.kr 농민전쟁의 의의 - 민란의 성격을 벗어나 근대적 사회를 지향하는 투쟁으로 발전 - 근대적 지향점을 분명히 제시함 → 집강소 통치기를 통해 농민 주도의 근대화 경험 - 지주층 중심의 근대화 기도에 맞서 농민층의 독자적 목소리 분출 - 반일연대 전선의 구축을 시도 일부 성공 (김학진과의 제휴 등) - 반제국주의 투쟁의 독자수행으로 근대 민족사회의 터전을 형성 농민전쟁의 한계 - 근왕적 사고를 완전히 탈각하지 못함. - 전국 농민군간의 보다 견고한 지역, 조직적 결속이 부족 - 반일 연대전선의 구축 실패, 전쟁의 독자수행 (상층 개혁세력과의 연대 실패, 지방에서 고립) 전쟁 패배후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유생 등 반농민적 보수연합에 의해 와해됨 -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과 적절한 활용에 대한 아쉬움

  30. 3. 이후 민족운동에 미친 영향 www.champeople.or.kr 반봉건 운동의 지속 전개 - 궁방전을 두고 농민과 정부간 토지소유권 다툼 빈발, 항조운동 일상화 - 용인(1899년), 경흥(1900), 임실, 은진, 영산, 의령, 창녕에서 농민항쟁 발생 - 1898년 제주 방성칠의 난 농민층을 조직적인 무장군으로 편성하고 남학당을 이용 제주도의 독자적 왕국 건설 기도 - 1901년 제주 이재수의 난 정부의 잡세와 지방토호와 결탁한 천주교도 공격, 제주성 점령후 한달간 농성 반제국주의 투쟁의 전개 - 1905년 이후 통감부의 국유지 조사와 철도건설로 인한 부지문제 토지소유권 쟁취 투쟁 전개 (의주, 용천, 영평, 옹진, 용인, 창원, 해주, 서울남대문, 서울용산, 부산진 등) - 무장 농민군 중심의 영학당, 할빈당 투쟁 전개(농민전쟁의 잔여 세력으로 보국안민, 척왜양을 주장 반제반봉건 표방) <경부선 철도 기공식>

  31. www.champeople.or.kr 의병전쟁, 독립전쟁으로 계승 / 발전 <남한대토벌작전에 체포된 전남의병장> <한말 독립군>

  32. www.champeople.or.kr 새야 새야 녹두새야 웃녘 새야 아랫녘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함박 쪽박 열나무 딱딱 후여 새야 새야 녹두새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팔왕새야 네 무엇하러 나왔느냐 솔잎 댓잎이 푸릇푸릇 하절인가 하였더니 백설이 펄펄 흩날리니 저 강 건너 청송녹죽이 날 속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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