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8

우리의 영웅 조원 임정규 , 이창현 , 정원조 , 정윤호

우리의 영웅 조원 임정규 , 이창현 , 정원조 , 정윤호. 정애리.

gitano
Download Presentation

우리의 영웅 조원 임정규 , 이창현 , 정원조 , 정윤호

An Image/Link below is provided (as is) to download presentation Download Policy: Content on the Website is provided to you AS IS for your information and personal use and may not be sold / licensed / shared on other websites without getting consent from its author. Content is provided to you AS IS for your information and personal use only. Download presentation by click this link. While downloading, if for some reason you are not able to download a presentation, the publisher may have deleted the file from their server. During download, if you can't get a presentation, the file might be deleted by the publisher.

E N D

Presentation Transcript


  1. 우리의 영웅 조원 임정규,이창현, 정원조,정윤호

  2. 정애리 • 정애리 씨가 지원하고 있는 아동들은 국적도 다양한다. 지난 2004년부터 5년째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활동해 온 정 씨는 국내 아동 5명을 포함, 아프리카 가나와 모잠비크, 우간다와 콩고, 에티오피아와 르완다, 동남아시아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미얀마, 중동의 팔레스타인 등의 아동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녀는 후원 아동들을 직접 만나러 우간다와 방글라데시, 인도 등을 다녀오기도 했다.정애리 씨는 또 설날 연휴인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21년째 봉사하고 있는 성로원 아동 12명과 중국 문화탐방에도 나설 예정이다. 성로원은 월드비전이 지원하고 있는 미혼모 자녀기관이며, 그녀는 드라마 촬영으로 이곳과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봉사활동과 지원을 하고 있다. 해외여행이나 문화체험 기회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그녀는 여행비 전액을 지원하는 대단한 봉사를하는사람이다.

  3. 이수현 • 지난 2001년 1월 도쿄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술에 취해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한 한국청년이 달리는 지하철로 뛰어들었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운동을 즐기고, 또 이웃나라 일본의 문화를 조금 더 알고 싶었던 평범한 한국청년 이수현이었다고 한다.이수현은 철로에서 기차 올 때 까지 7초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전차를 막아서다 죽음을 맞이했다. 姑 이수현의 어머니 신윤찬 씨는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도 나는 ‘조금만 더 이기적으로 키웠다면 우리 아들이 지금도 살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면서도 “아들의 꿈은 한국과 일본을 잇는 외교관이었다. 어떤 일본인이 ‘100명의 외교관보다 더한 업적을 남겼다’는 말을 해줘 기쁘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만약 그 상황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이수현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도 아닌, 같은 나라 사람도 아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희생해가며 구한 그런 모습을 본받고 싶다.

  4. 행복전도사 최윤희 • 행복’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기자의 폐부를 찌른 것은 유서 한 귀퉁이에 쓰여 있는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보니 밧데리가 방전된 거래요”란 한 구절이었다. 타인에겐 그토록 ‘행복할 권리’를 설파했건만 정작 자신은 내색 한 번 못하고 제대로 돌보지도 못한 채 스스로를 방치해버린 셈이다. 주변의 기대를 많이 받는 여성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덫’이기도 하다.한국상담대학교대학원 이혜성 총장은 “고인의 경우, 행복 강박증으로 자살에 내몰린 것 같아 안타깝다”며 “남의 어려움을 먼저 도와주다보니 오히려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의식하고 반응하는 것이 늦어졌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치유할 시기를 놓쳤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여기에 “여성이기에 특히 감정을 잘 참아내고 인내하며 순응하는 데 태생적으로 익숙해져 있었던” 것도 이번 비극의 한 원인으로 봤다.그는 최씨가 생전에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 것에 대해 “몸의 통증과 우울증은 따로가 아닌 함께 가는 것이며, 어느 것이 더 우선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몸이 아프기 때문에 우울해지고 우울하기 때문에 몸이 더욱 아파진다는 설명이다.

  5. 가수 김장훈(기부) • 개발도상국을 위한 다보스포럼인 'GPLC(Global Peace Leaders Conference) Korea 2010' 조직위원회는 가수 김장훈의 지구촌 나눔과 평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 '평화의 새'를 수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도예가 최재일의 작품으로 유네스코 우수 수공예품으로 인정받은 작품인 '평화의 새'는 2006년 노벨평화상 및 마더테레사상의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네스에게도 증정된 바 있다.그러므로 그의 기부정신은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

  6. 강병열 1997년부터 경남 진주에서 신문지국을 운영하는 강병열(39)씨는 지난 13년간 일반성면 등 7개 면의 홀로 사는 노인 30명을 보살피고 있다. 2주에 한번씩 노인들을 시내 목욕탕에 데려가 목욕시켜주고 직접 이발까지 해준다. 지난 4일 오전 강씨가 노란색 신문 배달 승합차를 몰아 허름한 벽돌집 앞에 섰다. 유소임(83) 할머니가 불 꺼진 냉골에 홀로 누워 있다. 강씨는 할머니 팔다리를 주무른 뒤 과자 봉지를 머리맡에 놓았다. 골다공증 때문에 걷기도 힘든 할머니는 강씨를 "아픈 내 곁을 지켜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다. 유 할머니의 집을 나선 강씨는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 조조이(85) 할머니를 찾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종이문을 열자 컴컴한 방에서 할머니가 물에 밥을 말아 아침을 들고 있다. 혼자 사는 조 할머니는 3년 전부터 고혈압을 앓고 있다. 그는 "강씨가 수시로 들러서 챙겨주니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른다"고 했다. 강씨는 "신문을 배달하면서 '어려운 할아버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우연히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중풍에 치매까지 겹친 80대 노인은 누운 채 꼼짝하지 못했다. 가족도 찾아오지 않아 방안에 대소변 냄새가 진동했다. 강씨는 바로 목욕부터 시키고 텁수룩한 머리도 다듬어 드렸다. 강씨는 "직업상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노인 가운데 몸도 못 가누는 분이 많은 걸 알게 돼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도 없이 사는 형편에 무슨 봉사냐", "선거 나가려고 그러냐"는 등 주변 시선이 곱지만은 않아 처음엔 회의도 들었다고 한다. 진주 토박이인 그는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5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고교 졸업 후엔 철공소·운전기사를 하며 근근이 살아왔다. 지금도 한 달 수입 150만~200만원으로 다섯 식구와 산다. 강씨를 지탱해온 힘은 이발로 단정해진 머리를 보거나 목욕한 뒤에 "시원하다"며 웃는 노인들이다. 그는 "중풍 때문에 말 못하는 어르신도 머리를 깎고 나면 씩 웃는다"고 했다. 이렇게 자신처지도 힘든데 봉사하는 것은 본 받아야 한다.

  7. ‘폐지할아버지’의 선행 경남 진해에서 폐지와 재활용품을 팔아 모은 1천 만원을 불우이웃돕기에 선뜻 내놓은 70대 할아버지의 선행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13일 진해시에 따르면 경화동에 사는 김영권(79) 옹이 최근 폐지와 재활용품을 수집해 판 1천 만원을 지역 방송국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했다.김 옹은 2007년에도 폐지를 수집해 마련한 1천 만원을 방송국에 기탁한 사실이 최근에야 알려졌다.진해시는 김 옹이 지난 십 수 년간 거의 매일같이 집이 있는 경화동 일대를 누비며 각종 폐지와 재활용품을 모아 어렵게 장만한 돈을 잇따라 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탁해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옹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경화동 일대에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폐지와 재활용품을 모아 김 옹에게 전달하는 등 나눔 실천에 동참하고 있다고 시는 덧붙였다.김 옹은 20여 년전 군무원을 마치고 퇴직한 뒤 건강관리 차원에서 폐지 및 재활용품 수집활동을 시작해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이웃을 조금씩 도운 것 뿐이라며 겸손해했다고 시 관계자는 전했다.시 관계자는 "2번의 거액 기탁 외에도 김 옹은 수시로 어려운 이웃에게 쌀과 현금을 전달해 왔다"며 "할머니와 함께 넉넉하지 않게 살면서도 힘들게 모은 폐지를 판 돈을 선뜻 기탁하는 김 옹은 진정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만약 우리였다면 힘들게 모은 돈을 쉽게 기부할 수 있었을까?

  8. 감사합니다

More Rel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