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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인쇄출판. 발표자 : 201072231 김영륜. 목차. 다라니경 고려대장경 금속활자 백추지 송연묵 붓. 20-1.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966 년 불국사 3 층 석탑 ( 석가탑 ) 에서 발견된 유물로 , 8 세기 중엽에 간행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 .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20-1. 무구정광대다라니경. 2.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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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인쇄출판 발표자: 201072231 김영륜
목차 • 다라니경 • 고려대장경 • 금속활자 • 백추지 • 송연묵 • 붓
20-1.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무구정광대다라니경 • 1966년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에서 발견된 유물로, 8세기 중엽에 간행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 무구정광대다라니경 2.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 1966년 10월 13일,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다가 석탑의 2층 탑신부의 금동제 사리함에서 다른 사리 장식과 함께 발견되었다. • 이때 함께 출토된 28점의 유물을 한데 묶어 1967년 9월 16일 국보 제126호로 지정하였다.
20-1. 무구정광대다라니경 3. 언제 만들었을까? • 본문 가운데 당나라 측천무후(624~705) 시대에 만들었던 목판 활자 글자체가 들어 있어 제작 연대를 비교적 확실히 알 수 있다. • 불경이 있던 석가탑이 751년 불국사가 다시 건립됐을 때 세워졌으므로 불경은 700~751년경 간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측천무후(則天武后) * • 중국에서 여성으로 유일하게 황제가 되었던 인물로 당(唐) 고종(高宗)의 황후였지만 690년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스스로 • 황제가 되어 15년 동안 중국을 통치
20-1. 무구정광대다라니경 4. 어떤 내용일까?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는 바라문을 구하기 위해 외우는 경전. • 죄를 없애고 목숨을 늘려 장수하는 법을 구하기 위하여 탑 속에 넣는 불경으로, 신라인의 종교적인 염원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이 부모님을 생각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탑 속에 넣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20-1. 무구정광대다라니경 5.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가장 오래된 인쇄물로 알려진 일본의 '백만탑다라니(百萬塔陀羅尼)'(770년경 제작)보다 20년이나 오래된 목판 인쇄본이며, 한국 고인쇄문화(古印刷文化)의 높은 수준을 증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 ‘백만탑다라니’가 조그마한 나뭇조각에 불경을 새겨 도장을 찍은 듯한 인쇄물인데 반해, 무구 정광대다라니경은 불경 전체 내용을 완벽하게 새겨서 찍어낸 두루마리 형태의 책이다.
20-1. 무구정광대다라니경 6. 신라의 독자적인 제지술을 증명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천년이 넘었음에도 발굴될 때 종이가 썩지 않고 형체가 보존되어 있었다. • 종이: 닥나무 => 신라가 중국 등에서 종이를 수입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훌륭한 종이를 만들었음
20-2. 고려대장경 1. 고려대장경 • 고려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져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고 있고, 국보 3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20-2. 고려대장경 2.고려대장경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20-2. 고려대장경 3. 고려대장경의 크기는? • 경판 1매 당 글자수 • 23(행수) x 14(1행당 자수) x 2(양면) ≒ 644字 • 경판 전체 글자수 • 644(경판1매당 글자수) ⅹ 81,258(총 경판수) ≒ • 52,382,960字 크기 및 규모
20-2. 고려대장경 4.고려대장경은 어디에서 만들었을까? • 진주지방의 남해연안에 분사도감을 설치하여 판각을 나누어 진행하였다. • 경판재료는: 거제도, 완도, 제주도 등지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白樺木)로, 거제목이라고도 함. <경남 합천군의 해인사>
20-2. 고려대장경 5.고려대장경은 누가 만들었을까? • 경판조성을 계획하고 필요한 경비를 부담한 것은 ‘최이(崔怡)’ 부자였다. ‘최이’는 ‘최충헌’의 아들로 경판 제작에 필요한 막대한 경비를 조달 • 경판을 제작하는데 직접 참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20-2. 고려대장경 * 팔만대장경판 해인사 인근서 제작? -성안 스님 '강화도 제작' 반박- • 팔만대장경판은 어떻게 해서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게 된 걸까? • 통설은 강화도에서 제작돼 그곳 선원사에 봉안됐다가 서울로 잠깐 옮겨진 뒤 조선시대인 1398년에 해인사로 옮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인사 측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해인사 성안 스님의 말."강화도 선원사는1245년에 최씨 무인정권의 원찰(願刹)로 만든거예요. 그런데 1245년이면 대장경판이 90%가 만들어진 때예요. 선원사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지요. 또 강화도는 몽골과 대치 중인데 수많은 사람이 건너가서 먹고자고 작업하고 할 여력과 공간이 없었어요."- 해인사 측이 주장하는 근거는 또 있다. 기록에 따르면 삼며라는 이름의 각수(刻手)는 팔만대장경과 관련해 9년 동안 360장이 넘는 경판을 조성한 것으로 나오는데, 그가 해인사 인근의 가야산하거사에서1241년 제작된 화엄경소사간판에도판각자로 이름이 올라있다. 삼며 외에도 광림, 왕주, 지일, 혜이, 도선 등 여러 명의 이름이 해인사 사간판과국간판인팔만대장경판에 동시에 나온다. - 교통도 불편하고 또 전란의 시기에 합천과 강화도에서 어떻게 같은 시기에 작업할 수 있었을까? • 결국 팔만대장경은 강화도가 아니라 해인사 인근에서 제작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게 해인사 측의 이야기다. 면밀한 학술적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부산닷컴 - 임광명 기자 -
20-2. 고려대장경 6.고려대장경 제작과정 • 벌목한 나무(산벚나무, 돌배나무 등)바닷물 속에서 1~2년 담기. • 소금물에 삶기-재목의 진액이 빠지고 , 건조 시 갈라짐, 비틀어짐 방지. 결 삭힘의 과정을 통해 부식예방, 방제효과 얻음. • 소금물에 삶은 재목을 물이 잘 빠지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1년 동안 건조하기.
20-2. 고려대장경 6.고려대장경 제작과정 • 닥나무와 맑은 계곡물로 종이 만들기 • 판하본(경판에 붙이는) 원고 쓰기 • 경판 새기기 • 오탈자 고르기 • 마구리 붙이고 옻칠해 경판 완성하기 *마구리:경판끼리 부딪히는 것을 막고 보관시 바람이 통하도록 양쪽 끝에 경판보다 두꺼운 각목을 붙인 후 네 귀퉁이에 구리판을 장식한 것
20-2. 고려대장경 7.고려대장경을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 경판이 총 81,240매에 달하며, 84,000가지 중생의 번뇌에 대치하는 84,000법문을 수록했다 • 총 글자수:약 5천 2백만여 자
20-2. 고려대장경 8.고려대장경에는 정말 오자가 없을까? • 고려대장경에도 오자는 있다. 그러나 여타의 대장경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오자가 적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받는 것이다.
20-2. 고려대장경 9.고려대장경의 내용은? •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 부처님 제자들의 말씀과 가르침, 불교의 계율 등이 새겨져 있음.
20-2. 고려대장경 10.고려대장경이 지닌 가치는? • 그 체제와 교정이 정확하고 조각이 섬세하고 정교함. • 오랑캐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웠던 상황 속에서 임금과 귀족과 백성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마음과 역사의 맥을 바로잡아 이어 가려는 민족의 염원이 간절하고 컸다는 것을 드러내는 민족 의식의 총화라는 데에서 그 의미가 빛나는 것이다.
20-2. 고려대장경 11.고려대장경에 숨은 과학적 우수성 • 경판의 가장자리 네 귀퉁이에 구리로 띠를 둘렀다. - 경판을 잘 보관하고 경판이 서로 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 경판 전체에 얇게 옻칠이 되어 있는데, 벌레가 나무를 파먹지 못하게 하고 목판이 잘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 경판의 한쪽 끝에는 작은 글씨로 이름을 새기고, 천자문으로 번호를 매겼다. 이것은 경판을 잘 정리하고 필요한 내용을 쉽게 찾아서 인쇄하기 위해서이다. • 경판과 경판 사이를 띄우고 보관(일종의 굴뚝 역할을 함)해 경판 표면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20-2. 고려대장경 12.고려대장경 700년 보존의 비밀 “장경판전” • 해인사에 있는 장경판전은 고려 시대에 만든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판전 • 국보 제 52호,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2. 고려대장경 13.“장경판전”의 창건 시기 •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고, 1481년(성종 12)에 고쳐짓기 시작해 1488년에 경판당 30칸을 짓고 보안당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또 1622년(광해군 14)에 수다라장을, 1624년(인조 2)에 법보전을 각각 수리하였는데,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이때 수리된 것으로 생각된다
20-2. 고려대장경 14.“장경판전”건물배치 및 구조 • 건물 배치 • 남북으로 큰 건물이 나란히 있으며 남쪽:'수다라장’, 북쪽:'법보전’ 서쪽, 동쪽:작은 서고 • 건물의 모양 - 건물은 간결하고 장식적인 내용이 거의 없이 판전으로써 기능만 수행. - 수다라장과법보전은 각각 정면 15칸에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앞면과 뒷면의 창호의 위치와 크기도 서로 다르다.
20-2. 고려대장경 15.“장경판전”건축의 비밀1) • 팔만대장경의 보존을 위해 통풍과 습도, 온도 등을 고려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설계하였다. 수다라장과법보전의 앞창문과 뒷창문은 크기와 위치를 다르게 만들어 공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였다. - 나무 서까래와, 진흙과 기와로 뾰족하면서도 둥글게 만든 지붕도 직사광선에 의한 온도 변화를 막고, 공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 준다.
20-2. 고려대장경 15.“장경판전” 건축의 비밀2) • 건물 정문을 제외하고는 흙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는 온도와 습도를 적절하게 조절하기 위해서이다. • 안쪽의 흙 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20-2. 고려대장경 16.장경판전의 역사적 가치 • 유일함: 15세기 건축물로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다. • 과학성: 숯과 횟가루, 찰흙 등을 바닥에 깔아 놓아 습도를 조절하고, 해충의 침입을 막았으며, 창문도 공기가 잘 통하도록 되어 있는 매우 과학적인 건물이다. - 예술적 가치 : 조선 초기 전통적인 목조 건축 양식을 보이는 데 건물 자체의 모습에서 간결하면서 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20-3. 금속활자 1.금속활자(金屬活字) • 철, 구리, 납 등의 금속으로 만든 활자를 말하며, '주자'라고도 한다. •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금속 활자본:'직지‘ • 고려·조선 시대의 금속활자는 구리·철·납 등 사용 • 현대: 납 사용.
20-3. 금속활자 2.금속활자의 종류 • 금속활자는 활자를 만드는데 사용된 금속의 성질에 따라 석활자(錫活字), 연활자(鉛活字), 동활자(銅活字), 철활자(鐵活字) 등으로 나누어진다.
20-3. 금속활자 3.금속활자 주조법 • 주조기법은 가열·용해된 액체형태의 소재를 주형(鑄型)에 부어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 • 재료: 청동(구리와 주석(朱錫)의 합금) • 주석을 섞는 목적은 구리보다 단단한 금속을 만들기 위해서이며, 주석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흰색이 나고 부서지기 쉬운 성질을 갖게 된다. • 밀랍주조법(蜜蠟鑄造法.고려시대)과 주물사주조법(鑄物砂鑄造法.조선시대)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3. 금속활자 4.금속활자 주조방법1)밀랍주조법 글자본선정 자본붙이기 어미자 붙이기 밀랍가지만들기 거푸집만들기 쇳물붓기 완성된 주조활자 활자다듬기 조판 인쇄하기
20-3. 금속활자 4.금속활자 주조방법 2) 주물사주조법 • 자본 붙이기->어미자 만들기->주형틀 완성하기-> 암 숫틀 합치기->쇳물 붓기->활자 떼어내기 활자가지쇠 떼어내기 가지쇄 및 어미자 빼내기 완성된 거푸집 쇳물을 붓는 과정
20-3. 금속활자 5.금속활자본 특징 ① 본문의 항렬(行列)이 바르지 않고 비뚤어져 있으며, 글자가 옆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경우도 있다. ② 인출(印出)된자면(字面)에서 나타나는 묵색(墨色)의 농도 차이가 심하고 반점(斑點)이 나타나있는 경우가 많다. ③ 일(日)이나 일(一) 등의 글자는 아예 거꾸로 식자된 경우도 있으며, 어떤 글자는 인쇄 도중에 탈락된 경우도 있다. ④ 동일 면에서 동일한 활자의 같은 글자모양이 보이지 않으나, 동일한 활자가 다른 장에서는 사용되고 있다. ⑤ 글자의 획에 너덜이와 티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직지금속활자본
20-3. 금속활자 6.우리나라의 금속 활자가 인류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책을 찍어 낼 수 있게 됨에 따라 학문과 교육이 발달할 수 있었다. • 중국으로부터 문화를 수입하다가 중국을 제치고 금속활자를 먼저 발명했다는 것은 고려가 당시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 임진왜란 때 금속 활자 기술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금속 활자에 영향을 주었다. • 고려의 금속 활자는 불교의 발달에 기여하였다. 금속 활자를 이용하여 많은 불교 서적을 찍어 냈다. 직지심체요절 금속 활자
20-3. 금속활자 7.금속 활자가 목판 활자보다 좋은 점 • 단시간에 많은 양의 책 인쇄 -만드는 데 기술력이 필요하지만 활자판 제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목판에 비해 적게 든다. • 인쇄가 끝난 다음 활자를 흩어 놓았다가 다른 책을 인쇄할 때 사용할 수 있다. • 장기간 보관- 목판은 보관이 어려워 자칫 잘못하면 깨어지거나 썩어서 못 쓰게 될 수 있지만 금속 활자는 한 벌의 활자를 만들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20-3. 금속활자 8. ‘구텐베르크’와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비교 • 독일의 인쇄술 발명자.(1400~1468) • 구텐베르크: 유럽 최초의 활판 인쇄의 발명자로 가동식 활자의 이용법과, 인쇄기를 처음으로 개발. • 우리 나라: 한자를 사용할 수 있는 지식층의 숫자가 적어 책의 수요도 많지 않았으므로, 활자 인쇄술이 지닌 잠재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었다. • 서양: 알파벳은 활자 인쇄술의 보급에 적절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 1450년 평평하게 배열할 수 있는 금속활자를 주조하고 인쇄용 잉크를 발명하여 수백 권의 책을 인쇄한 구텐베르크가 이러한 가능성을 최초로 실현했다고 할 수 있다.
20-4. 백추지 1. 백추지(白錘紙) • 한지(韓紙)를 종이 질로 분류했을 때, 희고 광택이 나는 종이 • 다듬이로 다듬어 반들반들하고 부드럽게 만든 흰 빛깔의 종이 • 문헌 [손목(孫穆)의 『계림지(鷄林紙)』]에 보이는 가장 오래된 종이
20-4. 백추지 2.백추지의 유래 • 신라시대에는 백추지(白錘紙)가 생산되었는데 이 종이는 중국에서조차 '천하에 비할 수 없는 종이'라 예찬한 바 있고 삼국 유사에는 진덕여왕 원년에 종이로 연(鳶)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 손목(孫穆)의 계림유사(鷄林類事)에 '고려의 닥종이는 밝은 빛을 내므로 모두들 좋아하며 이를 일러 백추지(白錘紙)라 한다' 라고 기록 되어 있음을 볼 때 고려시대에서도 신라에 이어서 계속 백추지(白錘紙)를 생산하였던 것 같다.
20-4. 백추지 3.종이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 • 채륜(蔡倫)이 종이를 발명한 이래, 제지법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372년에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 일본 《서기》에 고구려 영양왕 21년(610년)에 승려인 담징이 일본에 종이 제작 기술을 전했다는 기록과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닥종이 뭉치 등으로 미루어 보아 그 이전부터 종이를 만들어 썼음을 알 수 있다
20-4. 백추지 4.한지 재료 • 닥 (Paper Mulberry): 닥나무는 다년생으로 참닥나무, 산닥나무, 삼지닥나무가 있는데, 흔히 말하는 닥종이의 '닥'은 참닥나무를 가리킨다. • 닥풀(Abelmosk):1년생 초목으로뿌리를 찧어 물에 넣으면 끈적거리는 액이 추출된다. • 닥섬유가 물 속에서 잘 분산되도록 도와주는 한편, 닥풀의 양을 증감시켜 종이 두께를 조절하기도 하고 젖은 상태에서 한 장식 잘 떨어지게 해준다
20-4. 백추지 5.한지 제조방법 ① 닥나무 가지를 채취한다. ② 닥나무 가지를 솥에 넣고 찐 다음 껍질을 벗겨서 말린다(흑피). 흑피를 다시 물에 불려서 겉껍질을 벗겨 백 피로 만든다(닥종이의 원료). 백 피를 양잿물에 넣어 4~5시간 정도 삶는다(양잿물에 넣어 삶아야 닥껍질이 부드러워진다). ③ 삶은 백 피를 흐르는 물에 씻어 티를 골라낸다.
20-4. 백추지 5.한지 제조방법 둥글게 뭉친 닥을 절구에 찧어서 섬유를 분해시킨다. 지통에 물과 닥을 넣어 풀대질(풀대라고 부르는 닥나무 속대나 대로 원료를 잘 푸는 일)을 한다. 종이를 한 장씩 떠내어 쌓은 후 눌러서 물기를 뺀다. 건조시켜 다듬는다.
20-4. 백추지 6.한지의 우수성 양지는 목재 펄프로 만들어 약한 데 비해 섬유가 기다랗고 형태가 뚜렷하며 질기고 견고하며 단단하다. (옻칠을 입힌 몇 겹의 한지로 만든 갑옷이 있음) 촉감이 부드럽고 통기성과 햇빛 투과성 및 보온성이 뛰어나다. => 창호지로 활용 한지는 다른 종이와는 다르게 질감이 독특하고 부드러운 효과를 만듭니다.=> 각종 공예작품으로 활용 중국과의 외교에 필수품을 여겼으며 중국 역대 제왕의 전적을 보면 고려종이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20-4. 백추지 7.한지가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이유는? • 강한 내구력(오래 견디는 힘):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모양이나 색이 변하지 않아 생활에 잘 이용할 수 있다. • 뛰어난 실용성: 질기고 통풍이 잘 되며 지질이 부드럽기 때문에 각종 공예 작품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 한지는 약해 보이면서도 질기고, 소박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우리 민족성을 대표하는 문화 유산으로 손꼽힌다.
20-4. 백추지 8.한지의 활용 • 한지를 활용해 각종 공예품을 만들어 쓰곤 했다. 지승공예, 색지공예, 지장공예, 후자공예, 지호공예 등이 그것이다. • 종이우산, 옷본, 종이 항아리, 부채, 갓통, 종이꽃(조화), 종이돈(지폐), 부적 등도 종이를 응용한 또 다른 생활용품이다 .
20-5. 송연묵 1.송연묵(松煙墨) • 소나무를 태워서 그 그을음에 아교와 기타 약품을 섞어 만든 묵으로 ‘숯먹’ 또는 ‘개먹’이라고 함 • 송연: 아교: 물=10:4:10 (단위: 근) • 한(漢)나라 이후 제묵(製墨)은 송연묵뿐이었으나, 송(宋)나라 때 장우(張遇)가 식물성 기름을 태워서 만든 유연묵(油煙墨)이 나옴에 따라 송연묵은 점차 유연묵에 밀려 쇠퇴하였다. • 송연묵은 진하게 갈면 빛깔이 칠흑이지만, 연하게 갈면 푸른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20-5. 송연묵 먹의 발달사 1)먹 발명 이전 • 갑골시대(甲骨時代)·금석시대: 문자를 골편(骨片)이나 금석(金石)에 새김. • 죽간시대(竹簡時代): • 대나무 조각이나 나뭇조각 또는 천 등에 문자 기록. • 붓이 아닌 죽정(竹挺)이란 옻(漆)을 묻혀 사용. • 그 문자의 획이 마치 올챙이 모양과 같다 하여 죽첩과두문자(竹牒蝌蚪文字)라고 함. • 먹의 원료: 흑연과 같은 자연산 석인이라는 광물에 칠을 섞어 사용. • 문화 발달하면서 그을음(煙煤)을 칠 대신 쓰고 이어 아교풀과 섞어 쓰게 되면서 제먹(製墨)의 단계로 발전되었다
20-5. 송연묵 먹은 언제부터 사용되었나? • 먹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후한(後漢)의 위탄이란 사람이 발명하였다고 한다. • <철경록>에 고구려 때의 송연묵을 당나라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 담징이 제묵법을 일본에 전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 => 삼국시대에 이미 먹의 사용이 성행한 것으로 생각되고 그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5. 송연묵 먹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송연묵 • 신라의 양가(楊家)·무가(武家)의 먹은 모두 송연묵으로서 그 품격이나 질이 매우 좋았으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조선먹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 육우(陸友)의 <먹사(墨史)>에 의하면 "고려가 진공한 먹은 맹주(猛州·현 평안남도 맹산)의 것이 가장 좋고 순주(順州·평안남도 순천)의 것이 그 다음이며”...... 라고 하였다. => 평안남도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먹이 주로 수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일본에서의 먹의 사용은 601년에 고구려의 담징이 제지법과 제먹법을 전해준 데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