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likes | 400 Views
3. 농민의 저항. 농민의 유랑 농민 의식의 성장 홍경래의 난 진주민란. 1) 농민의 유랑. 농민 생활의 궁핍 삼정 문란 , 탐관 오리의 착취 , 자연 재해 심화 : 홍수 , 가뭄 , 전염병 농민의 유랑 화전민 , 광산 • 수공업촌의 품팔이 간도 , 연해주로 이주 잔존 농민의 부담 가중 농촌 피폐. -' 춘향전 ' 암행어사 이몽룡의 시 -. 金樽美酒千人血 ( 금준미주천인혈 ) 玉盤佳肴萬姓膏 ( 옥반가효만성고 ) 燭淚落時民淚落 ( 촉루락시민루락 )
E N D
3. 농민의 저항 농민의 유랑 농민 의식의 성장 홍경래의 난 진주민란
1) 농민의 유랑 • 농민 생활의 궁핍 • 삼정 문란, 탐관 오리의 착취, • 자연 재해 심화 : 홍수,가뭄,전염병 • 농민의 유랑 • 화전민, 광산•수공업촌의 품팔이 • 간도, 연해주로 이주 • 잔존 농민의 부담 가중 농촌 피폐
-'춘향전' 암행어사 이몽룡의 시- 金樽美酒千人血(금준미주천인혈) 玉盤佳肴萬姓膏(옥반가효만성고) 燭淚落時民淚落(촉루락시민루락) 歌聲高處怨聲高(가성고처원성고)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홍수의 피해 • 1729년 : 함경도 1,000여 명 사망 • 1832년 : 전국 7,670여 호 유실293명 사망 • 1845년 : 관서지방 4,000여 호 유실500여 명의 사상자 • 1856년 : 해서지방 5,000여 호 인가 파괴 • 홍수로 수재민이 다수 발생 농촌을 떠나 유랑민이 된 경우가 많음
기근(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함) • 17c 중엽~19c : 규모가 큰 기근이 52회 • 1672년 : 전국, 기민 68만 명, 6월의 아사자만 1만 9천여 명 • 1733년 : 연인원 40여 만의 기민, 1만 3천여 명 아사 • 1763년 : 호남 지방, 48만 의 기민 • 1792년 : 해서, 관서 지방, 46만 명 기민 • 1839년 : 전국 기민의 연인원 839만 명(전국 인구 758만 보다 많음) • 빈번한 기근으로 대규모의 유랑민 발생
전염병의 유행 • 17c 중엽~ 19c 중엽 • 피해가 큰 전염병(콜레라, 장티푸스, 천연두 등)이 79회나 발생 • 1699년 25만여 명 사망 • 1742년 수십만 명 사망 • 1749년 50만-60만 명 사망 • 1799년 12만 8천 명 사망 • 1821~1822년:콜레라 수십만명 사망
2) 농민 의식의 성장 • 농민층의 의식 성장 저항 • 정부 및 탐관 오리 비방(벽서,소청)납세 거부,집단 항의, 수령 모욕 • 관아 습격, 탐관 오리 폭행, 도적화 • 양반의 불만 증대 • 세도가와 연결되지 못한 지방 양반들의 불만 고조 : 관직 소외 • 19c : 전국적 농민 봉기 • 홍경래 난, 진주 민란
3) 홍경래의 난(1811) • 원인 • 세도 정치하의 농민층의 시달림 • 서북 지방인에 대한 차별 대우 • 홍경래(몰락 양반)의 봉기 • 참여 : 빈농, 광부, 품팔이꾼 • 청천강 이북의 여러 고을 점령 • 정주성 싸움에서 진압됨(1812) • 영향 : 농민 각성 계기 이후 농민 봉기에 큰 영향
4) 진주 민란(1862) • 원인 :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착취 • 봉기 : 유계춘(잔반) + 농민층 • 결과 : 전국적 농민 봉기 확산의 계기(함흥 ~ 제주도) 임술 봉기 • 농민 봉기의 의의 • 정치적 혼란,삼정 문란,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항거하여 사회적 불만을 나타낸 농민층의 자각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