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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십자가 고난. 요한복음. 유다의 배반과 예수의 체포 (18:1-19:16). 빌라도의 사형 선고 (19:1-16). (1) 빌라도의 재판 (1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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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십자가 고난 요한복음
유다의 배반과 예수의 체포(18:1-19:16) 빌라도의 사형 선고(19:1-16) (1)빌라도의 재판(19:1-13)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 (히브리 말로 가바다) 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1-13) 진리도 수난 당함을 볼 수 있다. • 고통과 수치를 당함 • 빌라도는 주님을 죽음에 넘기는 것을 막고 대신 혹독한 매질로(태형) 대신하려 했는데 이 형벌은 죽거나 상처가 일생 동안 남아 수치스럽게 만든다. • 바울 사도는 그 형벌을 다섯 번이나 당했기에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했을 것이다. • 주님의 고통과 수치는 바로 하나님 앞의 불의한 우리를 위함이며 지금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의 몸에는 그 채찍의 흔적이 있을 것이다 • 완악한 불신 이웃을 사랑하려면 우리 마음에 고통과 상처와 수모의 흔적을 남길 각오를 해야 한다. • 가시 면류관을 쓰심 • 병사들은 진리의 머리에 왕관 대신 가시관을 씌웠다. 그러나 주님은 그때부터 실질적으로 만 왕의 왕이 되셨다. • 로마의 창칼도, 빌라도의 관저도, 안나스의 아름다움 뜰도 '한 여름밤의 끔'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가시 왕관은 오늘도 영원하다. • 세상 불의의 유혹은 감미롭지만 찰나적이다. 그러나 진리의 삶은 고통스럽지만 영원하다. •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 모순됨으로 인한 수치 • 병사들이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 예수를 때렸는데 이것이 하나님과 그 진리를 대하는 세상의 모순된 모습이다. •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와 사랑과 평화를 말하지만 마음은 그 진리에서 떠나 있어 폭력을 더 사랑하고, 그 폭력으로 진리를 억누르려 한다. • 그러므로 성도들도 신앙 고백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지 말씀을 삶에 적용시키는지 사랑과 경건이라는 명분으로 주님의 교회와 형제들과 주의 종들을 혹시 괴롭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진리가 악용됨을 볼 수 있다. • 종교 양심의 악용 • 율법을 악용함. •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7 절) 그리스도는 죽어야 한다고 종교 지도자들은 외쳤다. •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7 절)이라고 주님이 자신을 신격화했다는 것이다. • 그러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박게' 하라고 광란을 일으킨다. • 인간 종교의 편견이 어느 만큼 무서운 해독을 인간 세계에게 끼치는지 여기서 볼 수 있다. • 종교적 편견은 인간의 도리 마져 파괴한다. 선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종교심을 오직 증오로 분출시키고 있다. •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증오심'을 '내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그래서 바울처럼 십자가를 자기에게 적용시켜야 한다. (2)불의한 재판(19:14-16) • 정치를 악용함. •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는 고백은 성도의 신앙 고백을 정치에 악용하는 죄악이다. • 우리는 주님의 진리와 교회를 개인의 영달과 야욕에 악용하는 자리는 어찌하든지 피해야 한다. • 신앙 도리의 악용 • 빌라도는 그리스도를 처참하게 만든 뒤 유대 군중들에게 보이며 '보라 이 사람이로다'고 했다. • 이 말의 뜻에는 첫째는 '보라 이 삼류 민족들아 너희 왕의 모습이다'라는 민족적 우월감이다. • 둘째는 '보라, 이런 나약한 인간을 너희가 죽일 필요가 있느냐는 동정을 이끌기 위한 술수이다.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 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14-16) 확산되어 지는 불의의 세력 • 계획적이고 조직적이다. • 선이나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마음의 양심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자연스런 행위이다. 그러나 불의나 불법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과 의도 하에 행해진다. •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한 것은 공생애초기부터 있어 왔으며 로마의 정치 세력과 결탁하여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조작된 계획이었다. • 이처럼 불의나 불법은 사전에 치밀하고도 의도적으로 계획이 된다. • 민중을 선동한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를 추종했던 수 많은 무리들이 하루 아침에 돌변하여 예수를 죄인 취급하는 것은 불의한 자들의 선동 때문이다. • 이들의 입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치며 자신들의 왕은 가이사뿐임을 시인토록 유도한다. • 불의와 불법은 민중을 선동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군중 심리에 의해 자신의 냉철한 의지와 이성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게 한다. 성도는 불의의 대하여 올바른 증인이 되어야 한다. • 바른 것을 보고들을 줄 알아야 한다. • 사람은 보고들은 대로 생각하므로 밝은 곳에서는 밝음을, 어두운 곳에서는 어두움을 깨닫게 된다. • 그러나 밝음 뒤에 있는 그림자를 볼 줄 알고, 어둠 후에 오는 광명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제대로 된 사고와 이성이라 할 수 있다. • 무죄하신 예수에게 사형을 언도한 빌라도나 거기에 동조한 군중처럼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 바른 것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 • 성도들은 바른 것을 말할 줄 아는 입이 있어야 한다. 진실은 악에 대항하여 밝혀져야 한다. • 빌라도가 예수의 죄를 찾지 못하고도 두려워하여 무죄를 선언하지 못한 것은 악에게 진 것이다. • 우리의 입은 바른 말을 할 때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다라서 바른 것을 바로 보고 듣고 말하는 눈과 귀와 입이 많아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19:17-37)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19:17-30) (1)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19:17-22)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17-22) 자기 백성에 의해 처형되는 그리스도 •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가셨다. • 무거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그 수치스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의 사명으로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무거운 십자가의 고통을 참고 묵묵히 형장까지 지고 가셨다. • 십자가의 사명을 회피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런 그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는 홀로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한다. • 그리스도는 강도들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 그리스도께서 강도들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그에 대한 모욕으로 그리스도를 강도들과 마찬가지로 취급한 것이다. • 또한 가장 흉악한 죄인인 것처럼 그를 가운데 세운 것은 그리스도를 더욱 욕되게 하기 위함이다. •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노함이나 불평도 없이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모욕과 고통을 참으셨는데 이는 쉽게 분노하는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십자가 위의 명패 • 그 명패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되었다. • 빌라도가 그리스도의 명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것은 그가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조롱함으로 예수를 모욕하려 한 것이다. • 그러나 이 패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이 나타나 있다. 즉 그리스도가 진정한 유대인의 왕임을 그 패에 새겨 두려 하신 것이다. • 빌라도가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로 그 명패는 그리스도가 모든 민족의 왕임을 알리는 증거가 되었다. • 명패는 히브리어와 라틴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 명패가 여러 언어로 기록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만 왕의 왕임을 온 세상에 퍼뜨리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구세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대제사장들은 그 명패로 인하여 망신을 당했다. •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써라 하니 빌라도가 이를 거절했다. • 이는 자기들의 부당함을 합리화하려는 그들의 완악한 요구를 하나님께서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의 이름까지 못박으려는 그들의 요구는 오히려 그들에게 모욕과 망신으로 되돌아왔다. • 위선으로 가장한 악한 의도는 결국 자신에게 수치스런 대가로 돌아오는 것이다. (2)마리아의 여생을 요한에게 부탁하시는 예수(19:23-27)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23-27)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이들 • 그리스도께 무관심함 • 그들은 철저한 '무관심주의자'들이었다. 십자가에 달리실 분이 누구인지 왜 달려야만 하는지 알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귀찮은 일거리로 생각했을 것이다. • 또 그들이 나눈 옷의 의미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는데 군병들은 진리에도, 하나님의 은혜에도, 한 여인의 슬픔과 한에도 철저히 무관심했다. • 그 모습에서 인간의 불신앙은 무섭도록 무자비하고 파렴치하며, 야수화 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 그리스도의 외면만 봄 • 그들은 겉옷을 나눈 후 값비싼 속옷을 놓고 다투다 제비를 뽑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와 같이 불신자들은 그리스도보다 '그리스도의 옷'에만 관심을 둔다. •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보다 목에 걸 장식물로 이용 가치에 관심을 가지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 한다. • 진리에 대한 무관심보다 진리에 대한 무지나 편견이 하나님의 마음을 훨씬 고통스럽게 한다. • 그리스도의 옷을 나눔 • 그들은 자신들의 탐심 때문에 주님의 옷을 나눴다. 오늘날도 우리들의 탐심 때문에 주님의 교회가 사분 오열되고 있다. • 이것은 '주님의 영광'을 훼손하고 성도의 마음을 분열시키며, 교회의 권세와 능력을 격하시키는 행위이다. • 이제 진리와 경건을 '이익의 재료'(딤전 6:5)로 삼는 죄악은 자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이들 • 겸허한 사람들임 • 적어도 네 명의 여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까지 동행했다. •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는 이름 없는 신앙인이며 '이모'라고 하는 여인은 요한과 야고보의 모친으로 주님께 아들들을 부탁했다가 무안 당한 여인이다. • 십자가를 사랑하려면 무엇보다도 겸허함으로 자신을 무장해야만 한다. • 받은 은혜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임 • 막달라 마리아도 왔다. 악한 귀신들로 인한 고통을 주님께로부터 고침 받은 여인으로 보다 더한 은총을 받은 이들도 많건만 그녀만이 십자가까지 왔다. •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 받은 은총들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이들만이 구원의 십자가에도 이룰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이들 • 모친 마리아 • 그녀는 진리를 위해 한 여인의 꿈과 행복은 모두 하나님께 바쳤다. • 아직도 그녀는 주님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는 만큼 기꺼이 순종했다. • 진정한 '영력'은 바로 내게 주어진 사명을 알고 그 사실에 '동참할 수 있는 능력'임을 유념해야한다. • 사도 요한 • 주님은 모친 마리아의 여생을 요한에게 맡겼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해야 할 과제는 아직도 산적해 있다. • 그러므로 우리도 기꺼이 십자가 밑에 가서 주님의 부탁을 들어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19:17-37)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19:17-30) (3)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말씀(19:28-30)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28-30) 내가 목마르다. • 극한 갈증에 대한 호소 • 예수께서 전날 밤, 유월절 만찬 이후 아무것도 잡수신 것이 없으셨다. •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잡히신 후 끌려 다니시며 수치와 능욕을 당하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셨으며 무거운 십자가의 운반, 그리고 출혈로 갈증이 왔다. • 참기 어려운 '갈증'은 십자가형이 갖는 하나의 특징이다. 그 갈증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 갈증의 의미 • 물을 가지고 포도주를 만드시고 스스로 생수의 근원이라고 하시던 주님이 '갈증'을 호소하신 의미는 '인간 예수로서의 갈증'이다. • 그것은 우리에게 역설적인 의미를 주고 있는데 주님이 갈증을 느끼심으로써 우리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를 얻게 되는 '구속사적인 갈증'이다.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8). 다 이루었다. • 선지자직의 완성 • 메시아의 선지자직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는 데 그 직무의 목적이 있다. • 예수께서는 이 직무를 말씀의 선포(눅 4:43)와 기사와 이적을 통하여 나타내셨다. • 말씀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지혜를, 기사와 이적을 통해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인간들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 제사장직의 완성 •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것은 메시아의 대속 사역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해 사역을 의미한다. • 사랑의 친교, 헌신적인 봉사 생활을 통하여 주님은 인간을 섬기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 주여 주셨다. • 마침내 주님은 당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속하시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셨다(히 10:19, 20). • 왕직의 완성 • 예수께서는 왕으로 오셨다. 예수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통제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영계와 자연계를 완전히 장악하시고 제어하셨다. •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죄악과 죽음과 사탄을 정복하셨다. 이 세상에 그분의 통치권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그분은 만 왕의 왕으로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의 왕국을 건설하실 것이다. '다 이루었다'는 그의 선언은 인류의 개가요 하나님의 승리이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19:17-37) 물과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19:31-37)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31-37) (1)일반적인 가설에 관한 논증 • 완전한 죽음을 논증함 • 사람들은 예수께서 혼절하셨다가 요셉의 무덤에서 정신을 차려서 다시 나오신 ‘기절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요한은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친 '큰 날'이 바로 시작되려 했기에 유대인들의 요청으로 로마 병정들이 십자가의 죄인들을 타살했음을 증언한다. • 첫째로 로마 병정들은 검시관의 입회 하에 큰 망치로 주님 양편에 달렸던 죄수들부터 타살하기 시작했는데 주님께서 숨진 것을 확인하고는 멈췄다. • 둘째로 로마의 병정이 매달린 주님의 심장을 찔러 재차 '확인 살해'했다. 셋째로물은 심장 파열의 증거이다. •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죽으심을 논증함 • 당시에는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과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비천하고 부정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으며 죽으셨으며 등 '가현설‘을 주장했다. • 그래서 요한 사도는 '물과 피'를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죽으심'임을 역설한 것이다. • 만약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환상적인 것이었다면 그 생애도 환상적이었으며, 그 속죄의 죽으심도 종교적 의미만을 제공하는 철학일 뿐이다. • 기독교는 종교 철학을 신앙의 근거로 삼지 않으며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으며, 인류를 대신한 흠 없는 인간으로서 속죄를 하신 사실을 믿는 것이다. (2)예언적 성취에 대한 논증 • 유월절 양으로서의 죽으심 •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심판에서 구해 주셨다. 그 후에 어린양의 뼈는 꺾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민 9:12). • 세례 요한에 의해 '하나님의 어린양'(요 1:36)으로 증거 되신 그리스도는 유월절 명절이 시작되는 때 인류의 희생 양으로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졌다. • 그 속죄의 피를 우리 삶 속으로 영접해야 한다. 주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속 계획의 성취이다. • 심판의 근거로서의 죽으심 •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찌른 자를 보리라'(37 절). 는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불의에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실 것과 장차 의의 심판자로서 재림하신 것을 암시한 것이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것을 양보하고 우리 세계로 오신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외면한 어리석은 자들의 죄악을 폭로하는 심판의 근거이다.
예수의 장례(19:38-42) 그리스도의 장례(19:38-42)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38-42) (1)시체의 인도 • 그리스도의 시체는 아리마대 요셉에게 인도되었다. • 아리마대 요셉은 비록 겉으로 드러난 자는 아니었으나 그리스도의 성실한 제자였다. 더구나 그는 대단한 재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 12 제자 중 그리스도를 장사 지내려는 용기가 없었으나, 요셉은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인도해 달라고 할 정도로 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 그는 자기가 갖고 있는 물질을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에 사용한다는 데 큰 기쁨을 느끼는 자였다. 그의 재물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곳에 쓰였다. •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으로 봉사했다. • 니고데모도 역시 아리마대 요셉과 같이 그리스도의 숨은 제자였다. 또한 그 역시 재력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비싼 향품으로 봉사할 수 있었다. • 그는 부활을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향품으로 시체의 부패를 방지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주님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충분히 보여준다. •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을 자청하여 장사 지내려고 한 그들의 용기와 성의는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이들과 같은 믿음의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 그들은 그리스도의 시체를 향품과 함께 세마포에 쌌다. • 그들은 당시 장례 풍습대로 시체가 썩지 않도록 향품을 넉넉히 바르고 그 시체를 세마포로 쌌다. • 그들이 사랑하는 귀한 분의 몸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봉사했다. • 그것은 그들이 살아 계실 때의 그리스도만큼이나 죽은 그리스도의 몸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 그들은 성도라면 누구나 그리스도를 위해 언제나 아낌없이 최선의 것으로 봉사해야 함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2)무덤에 안치되는 그리스도 • 그리스도의 시체는 동산의 새 무덤에 장사되었다. • 그 무덤은 요셉의 소유로 바위 속에 판 것으로서 입구는 큰 바위로 막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무덤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무덤이 될 수는 없었다. • 그 무덤은 그리스도께서 잠시 머문 잠자리로 무덤이 새 무덤이었다는 것도 그곳에 죽음의 흔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배려이다. • 그리스도는 순결한 처녀에게서 태어난 몸이므로 정결한 무덤에 누우셔야 함은 당연한 것으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를 위하여 이처럼 세심하게 어떤 부정함도 틈타지 못하도록 섭리하셨다. • 그들은 서둘러 장례를 마쳤다. • 정성을 다하여 장례 준비를 마친 그들은 서둘러 가까운 동산의 무덤에 그리스도의 시체를 안치했다. 그 날은 예비일로서 안식일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하고 기쁜 날이므로 안식일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슬픈 마음이었으나, 이런 침울한 분위기를 안식일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이 지키려는 그들의 성실함을 통해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도 세상일에 더 정신이 팔려 있는 우리들을 돌아 보아야 한다.
예수의 부활(20:1-10) 그리스도의 빈 무덤(20:1-10)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 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예수의 부활과 빈무덤 • 부활의 아침 •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의 여자들은 안식 후 첫날 새벽이 되자 서둘러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에 예수께서는 계시지 않으셨다. • 이 비어 있는 무덤은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건인 부활이 일어났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 이날을 기점으로 하여 인간의 의미가 달라졌으며, 생명의 개념이 달라졌으며 삶의 길이 달라졌다. • 구약의 율법과 예언은 예수의 복음 안에 완성되고 구약의 안식일은 '주의 날'로 흡수되었다. • 이날은 신약 교회가 예배드리는 거룩한 날로 정해진 날이며 기독교 선교와 찬양의 원동력이 되었다. • 빈 무덤의 증인들 •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한 막달라 마리아와 그 밖의 여인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베드로에게 고하러 간 사이에 다른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하여 천사를 발견했으며, • 이어서 요안나와 또 다른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고, • 이윽고 베드로와 요한이 도착했고, • 막달라 마리아가 다시 도착했는데, 그때 예수께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 • 이들은 모두 부활의 새벽에 빈 무덤을 목격한 증인들이다. (2)예수의 제자들과의 새로운 관계 • 보는 관계에서 믿는 관계로 • 예수의 제자들이 무덤에 찾아간 것은 예수의 시체를 보기 위해서였으나 그들은 빈 무덤과 세마포 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 그런데 요한이 들어가 보고 '믿었다'고 했는데 이는 육체로 계실 때에 관계였으나 '믿음'의 관계로 변한 것이다. • 부활하신 주님은 자유를 얻으셨기 때문에 나타나셨다가도 사라지시고 곁에 계시다가도 없어져 버리시는 그런 분이셨다. • 이제 그분과의 관계는 '믿음'의 관계가 아니고서는 교제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 보다 높은 차원의 교체 • 이때부터 주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는 한층 높은 새로운 차원의 교제가 시작된 것이다. 육체적, 가시적 존재로서의 교제로부터 영적, 신앙적, 존재로서의 교제로 승화된 것이다. • 육체적, 가시적 존재로서의 교제는 불완전하며 국한적 이기 때문에 영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영적, 신앙적 교제는 완전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교제가 가능하므로 영원할 수가 있다. (3)빈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 • 빈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 • 부활하신 예수는 무덤 속에 계시지 않으셨다. 이 순간부터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 주검이 없는 빈 무덤 위에 신약 교회는 세워졌다. • 이 부활 신앙은 기독교만이 갖는 유일한 신앙이다. 신약 교회 안에는 시체가 없다. 오직 영원한 생명의 표상인 '부활'만이 있다. • 빈 무덤은 모든 빛의 구원이다. 모든 생명의 산실이다. 모든 찬양의 원천이며 모든 승리에 개선문이다. • 선교의 원동력 •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 날 성령으로 다시 오심으로써 성령의 충만을 받은 제자들을 증인으로 세우셔서 복음을 확신시키셨다. • 예루살렘으로부터 땅 끝까지 선교할 수 있는 권능을 그들에게 부여해 주셨던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은 오늘도 많은 제자들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심으로써 복음의 역군으로 역사 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