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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s Serrano ( 안드레 세라노 ) 의 작품세계

Andres Serrano ( 안드레 세라노 ) 의 작품세계. 독특한 사진작가 분석 및 연구 < 사진기법과 이론 > 일본어과 03141085 이안나. 담은 내용. 안드레 세라노의 프로필 안드레 세라노의 작품세계 안드레 세라노의 작품논란에 관해 안드레 세라노를 조사 하며 느낀 점. 안드레 세라노의 프로필. 1950 년 8 월 15 일생 온두라스 출신의 아버지와 쿠바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 13 살까지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가톨릭 신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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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s Serrano ( 안드레 세라노 ) 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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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ation Transcript


  1. Andres Serrano(안드레 세라노)의 작품세계 독특한 사진작가 분석 및 연구 <사진기법과 이론> 일본어과 03141085 이안나

  2. 담은 내용 • 안드레 세라노의 프로필 • 안드레 세라노의 작품세계 • 안드레 세라노의 작품논란에 관해 • 안드레 세라노를 조사 하며 느낀 점

  3. 안드레 세라노의 프로필 1950 년 8월 15일생 온두라스 출신의 아버지와 쿠바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13살까지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가톨릭 신자였다. 브루클린 뮤지엄 아트 스쿨에서 ‘켈빈 더글러스’로부터 회화와 조각을 공부했다. 미술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 조감독으로 일하다 33살에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4. 주로 종교, 죽음, 섹스 등 3가지의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다. 안드레 세라노에 대한 구체적인 이력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본인이 밝히기를 꺼려 할 뿐 아니라 그런 것들이 예술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작가 자신이 누누이 강조하기 때문 이다.

  5. <종교 편> Piss light『오줌 속의 예수』 1987년 작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상(象)을 자신의 오줌속에 빠트린 화제작. 1997년 10월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서 발길질 당하고, 해머공격을 받고 급기야 작품이 훼손되고 전시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네덜란드 그로닝거(Groninger) 미술관에서는 교인들이 난입하고 미술관에 페인트 통을 던져 전시를 중단시키는 사태도 발생했다.

  6. 13세 살 때까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세라노가 왜 뒤늦게 종교성을 주제로 파격적인 예술작업을 시도했을까? 세라노 본인도 특정 종교집단과 예수에 대한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고 했듯이 그의 작품이 종교적 비판을 테제로 삼았지만 오히려 상업적인 냄새가 더 짙게 풍긴다. 물론 누구도 세라노와 카톨릭간의 어떤 비밀스런 경험이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작품 <천당과 지옥(Heaven and Hell)>(1984) 처럼 그의 초기 작품들을 볼 때 카톨릭을 소재로 삼았던 것은 당시 라틴 아메리카 카톨릭계에서 불거져 나온 '주체 신학'과, 또 당시 맹위를 떨쳤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서구중심, 기독교 중심의 문화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세라노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자신의 오줌통에 빠트림으로써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가치체재의 전복을 시도했다. 예수를 믿든, 믿지 않든 인간이면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죄악을 세라노는 결행했다. 그는 신성의 상징 예수 그리스도를 전복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갖는 신비주의적이고 제의적인 생각들을 파괴시키고자 한 것이다.

  7. 작품 <천당과 죽음>이 그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여인의 몸을 타고 흐르는 선홍빛 붉은 피와 추기경의 붉은 색의 옷은 성적 갈망 자체이다.

  8. 『성(性)의 역사(A history of sex)』 1995~1996 백주 대낮에 베란다에서 섹스의 향연을 펼치거나, 늙은이?젊은이를 가리지 않고 향락의 섹스판을 벌린 시리즈로 사회적 센세이션을 몰고온다. 오늘날 인간들이 누구나 섹스에 대해 변태적인 상상을 하며, 비정상적인 섹스를 꿈꾸는 존재임을 말한다 세라노의 걷잡을 수 없는 이단적인 행동은 그것이 리얼한 사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데 그 충격성이 있다. 현대미술에서 종종 신이 부정되거나, 또 종교에 대한 우리의 맹신과 그 어리석음을 표현한 경우가 있었어도 세라노처럼 리얼하고 충격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세라노 작품 그 자체는 노골적이지 않으나 사진에서 풍겨 나오는 힘, 사진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진폭은 대단히 리얼하고 충격적이다. 그의 "성의 역사(A History of Sex)" 시리즈(1995-96)는 끈적끈적하다 못해 매스껍기조차 하다. 사진 하나 하나를 보면 특별히 경멸스럽거나 외설스럽지 않은데도 이상하게도 속이 편치 못한 것이다. 사진이 너무 리얼해서 그런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고 부분 부분까지 세밀히 읽게 된다.

  9. <성의 역사 편> 세라노는 가장 저속하고, 가장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를 가장 아름답고 가장 리얼하게 표현하는 전략을 세웠다. <오줌 속의 예수>에 이어 <성의 역사> 시리즈에서 그것들이 잘 나타난다. 세라노의 성의 역사 시리즈는 인간들이 섹스에 대해 한 번쯤 갖는 변태적인 상상들을 현실적인 모습으로 드러낸다. 때문에 관객들은 역겨워 하면서도 사진에서 내뿜는 시각적 힘에 빨려들어 결국 보고 또 보고 머리 속에 강렬히 심어놓는다. 우리가 충격적이었다고 말한 <레오의 판타지(Leo's Fantasy)>(1996), <안토니오와 울리크(Antonio and Ulrike)>(1996) 정도는 "성의 역사" 시리즈 중에서 강도가 약한 사진들이다. <붉은 조약돌(Red Pebbles)>, <테레사(Teresa)>, <오토-에로틱(Auto-Erotic)>과 같은 강력한 성적 하드코어 작품들은 아마 우리 나라 화랑에서는 벽에 걸리기 어려울 것이다.

  10. 『체액(Fluid) 시리즈』 성스런 보혈을 AIDS로 감염된 피로 그리고 일용할 양식의 우유를 더러운 정액으로 둔갑시킨 문제작으로 세상에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세라노가 오줌, 피, 젖을 통해서 진행시킨 체액 시리즈는 가장 인간적인 물성,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체액을 이용하여 신비주의에 대한 개인적인 탐험과 파괴의 미학을 보여준다. 파괴의 미학은 3가지의 색, 황색(yellow), 적색(red), 흰색(white)으로 나타나며 노란색은 오줌(urine), 붉은 색은 피(blood), 흰색은 젖(milk)을 상징한다. 이 세 가지의 색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3가지 체액의 색으로서 세라노 작품의 가장 상징적인 붉은 색의 피를 갖고 설명하자면,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보혈로 생각하고 마시기도 한다. 그러한 세라노에게 있어 피는 인간의 피, 죽음의 피, 욕망의 피일 뿐, 결코 기독교가 상징화하는 죄사함과 부활과 화해의 상징의 피는 아닌 것이다.

  11. <피의 방류(Bloodstream)>(1987)도 마찬가지인데, 붉은 색은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피이다. 인간의 피가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부활의 징표가 아니라, 쾌락과 고통, 혹은 에이즈라는 속된 피, 그렇지만 인간적인 피라는 세라노의 주장은 피를 성스럽게 여기는 우리의 종교적 아이콘에 대한 전복인 것이다.세라노가 자신의 오줌 속에 예수를 빠뜨린 행위는 그야말로 인간의 종교적 환상을 깨기 위한 것이었다. 오줌을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주로 대체시킴으로써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된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체액으로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용서로 이용되었던 것을 역으로 오줌 속에 신성한 아이콘(예컨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성모 마리아 석고상)을 적셔버린 것이다. 그가 오줌을 가장 인간적인 체액, 인간에게 필수적인 체액으로서 포도주에 버금가는 소중한 보혈로 바꿔치기 한 것을 두고서 비평가들은 그의 어린 시절의 종교적 경험을 가정하기도 한다. 예컨대 제도화된 종교성, 특히 카톨릭 교회의 실체를 노출시킨 것은 그의 개인적인 종교관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 점, 세라노가 카톨릭 신자였다는 사실에서 카톨릭은 분개한다. 도널드 윌드먼과 같은 사람은 세라노의 예수에 대한 무례와 모욕은 크리스천에 대한 또 다른 박해라고 말한다.

  12. 세라노 사진이 대중에 충격을 주고, 또 여러 곳에서 비난을 받아도 미술관이라는 제도 속에서 호평을 받고 또 비싼 값에 판매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뛰어난 테크닉, 완벽한 표현성 때문이다. 누구도 그의 사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의를 달지 못한다. 세라노 사진 앞에서 그와 같은 완벽한 표현성에 압도당하고 만다. 그가 다루는 소재가 아무리 경멸스럽고 저질스러워도 사진에서 풍겨져 나오는 힘과 사진의 역동적인 표현성 때문에 누구나 예술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전의 작품인 "KKK(Ku Klux Klan)" 시리즈와 "부랑자들(Nomads)" 시리즈 그리고 "시체공시소(The Morgue)" 시리즈에서도 완벽한 조명, 완벽한 구도, 완벽한 컬러를 통해 살아있는 피부, 살아있는 인간을 느낀 적이 있다.

  13. <시체 공시소 편> 세라노는 비밀의 사원인 시체공시소에서 강력한 리얼리티를 얻고자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현실감 넘치는 조명과 컬러를 추구했다. 체액을 통해서 종교의 의미를 재해석하려 했던 것처럼, 사체(死體)를 통해서 죽음의 의미를 재해석하려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액체 추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현실감 넘치는 리얼리티가 "시체공시소"에서 나타난다.

  14. 클로즈업으로 인해 극단적인 디테일이 드러났으며, 인간의 피부색이 생생히 재현됨으로써 죽음이 주님의 부르심, 혹은 영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에 타죽거나, 음독 자살하거나, 총에 맞았거나, 칼에 찔렸거나, 목매달았거나, 차에 치였거나, 혹은 에이즈에 감염되었던 죽음일 뿐, 결코 숭고하고 성스러운 종교적인 죽음과는 거리가 먼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죽음이라는 리얼리티를 일깨운다.

  15. 그의Morgue(시체 공시소) 연작들은시체를 마치 정물화인양 생생히 전달함으로서 이성적 질서 아래 감추웠던 것들을 사정없이 드러내고 있다.

  16. 현대사진과 미술에서 안드레 세라노보다 스캔들이 많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예술가는 없다. 가장 뜨거웠던 로버트 매플소프의 경우도 그의 사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생존의 작가로는 세라노가 유일하다. 외설과 예술의 차이, 신성모독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법의 잣대를 재는 경우가 많다. 신성모독과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종교와 결부되면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세라노가 제기한 사회적, 문화적 컨텍스트의 이중성은 바로 이것이다.

  17. <안드레 세라노를조사하면 느낀것> 다른 어떤 말로도 표현을 못할 만큼 사진 자체뿐 아니라 그 속의 메시지 또한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여러가지 반응을 얻고 여러 양상을 얻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윤리적으로 따지거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가히 불온하고 선정적이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나는 사진이라는 예술의 자유성을 크게 느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마음에 와 닿고 메시지로 충격을 줄 수 있는 예술작품은 역시 사진이 최고라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렇게 거리낌 없이 담아 내 보이는 안드레 세라노 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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