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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죽었던 : 사람에게는 사회적 부적응이나 괴로운 강박관념보다 더 심각한 고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 거듭나지 않은 상태는 육신의 죽음과 매우 유사하다 . 육신의 죽음에는 성장과 활력에 필수적인 생명의 본질이 없는데 이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의 상태와 똑같다 . ( 엡 5:14; 요 6:53; 계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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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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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ation Transcript


  1.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2.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죽었던: 사람에게는 사회적 부적응이나 괴로운 강박관념보다 더 심각한 고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는 육신의 죽음과 매우 유사하다. 육신의 죽음에는 성장과 활력에 필수적인 생명의 본질이 없는데 이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의 상태와 똑같다. (엡 5:14; 요 6:53; 계 3:1) 요 6:53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계 3:1사데 교회-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3.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S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 때에: 회심 전에 행하여: peripateo문자적으로 "걸어 돌아다니다" 비유적으로 "살아가다""살다" 은유적으로 "삶의 행동"이라는 뜻.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허물과 죄"가운데 행하는 것↔거듭난 자들이 "선한 일"가운데 행하는 것과 대조돼 있다. 세상: kosmos=aion과 동의어

  4. 구분점: aion-두드러진 특징을 지닌 특정기간 kosmos-그 기간에 속하는 세상 풍속: aion "때"를 나타낼 뿐 아니라 그 시대의 생활의 양태인 Q과의 불일치와 분리 지칭하기도 함. 공중:대기권, 마귀가 눈에 띄지 않은채 우리를 두른 공중에 거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 권세 잡은 자: 마귀, J는 그를 "이 세상 임금"이라 부르심(요 12:31)마귀는 기꺼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믿게 하고자 한다. 성경에는 마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제시한다. 불순종의 S들: 불순종하는 자녀, 불순종하는 백성

  5.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도 다: 1,2절에서 이방인에게 이야기한 후에 이방인의 상태와 유대인의 상태를 비교하며 자기와 자기 동족 역시 "불순종의 S들"부류에 속했음을 드러낸다. 타락으로 인해 모든 사람은 동일한 수준으로 떨어졌다.(갈 3:22) 육체의 욕심: 저속한 본성의 욕구 지내며 [KJV]"had our conversation" anastrephō "이리저리 돌리다""거동하다" 원하는 것을 하여: 즉 육체와 거듭나지 않은 마음의 원대로 행함 진노의 자녀: 즉 진노 받을 만한 자녀

  6. 4 긍휼에 풍성하신 Q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큰 사랑: Q은 롬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X께서 우리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Q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또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결코 그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에게 구원의 사역을 하도록 동기를 유발시킨 것은 바로 이 사랑이었다. (요 3:16 Q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For God so loved world") 사랑은 그분의 품성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이며(요일 4:8) X의 인성에서 그 사랑의 최고표현이 증거된다.

  7. (1SM, 244)"Q의 S의 인성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X께 연결시키며 X를 통하여 Q께 연결시키는 황금사슬이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2:11,14~ -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Q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8.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X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X와 함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그분과 함께 살고 함께 다스리며 함께 후사가 되고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 그분의 영광에 참예한다. (갈 2:20)구원은 교훈이나 권고가 아니라 신자들이 믿음으로 X에게서 흘러나오는 활기찬 생명에 다가감으로 이뤄진다. 살리셨고: 쉬조오포이에오(suzoopoieo)"함께 살리다" zoopoieo는 신약에서 14회 사용, 죽음에서 생명, 거듭남, 새 생명으로 변화함을 지칭한다. X가 무덤에서 소생하신 것 처럼 사람도 영적 죽음에서 소생한다. 사람을 새로운 지위 곧 새 원칙이 다스리는 새로운 관께로 인도하는 것이 Q의 목적이다.

  9.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사도는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이라는 주제에 마음이 충만한 나머니 Q의 놀라운 행사를 강조하기 위해 이 사상을 여기에 부가적으로 삽입한다.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구원에는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세국면이 있다. 과거-죄의 정죄에서 해방되어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구원-"칭의" 현재-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구원-"성화" 매래-죄의 존재에서 해방되어 우리를 완전하게 하시는 구원-"영화"

  10. *2:4~6 활기를 주시는 X의 능력 Q께서 복음을 전함으로 비추는 빛에다 생명과 불멸을 가져 오시고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X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X도 타락한 사람들을 영적인 죽음에서 일으키사 그분의 생명으로 그들에게 활기를 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소망과 기쁨으로 채우신다 (원고 89, 1903).

  11. 6 또 함께 일으키사 XJ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일으키사: 우리는 생명을 주시는 Q의 은혜의 능력으로 일으킴을 받아 XJ안에서 새 삶을 산다. XJ 안에서: 이 문단의 핵심구절, "허물고 죽은"과 선명한 대조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Q 우편에 앉아있는 X를 보는 자들은 지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늘의 분위기에 거할 수 있다. X가 하늘 궁전에 들어가신 것은 구원을 받S이는 모든 사람이 그곳에 들어간다는 보증이라는 점에서 신자들은 지금 하늘세계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영적 생애는 하늘의 생활을 미리 맛보고 예상하는 것이다. X는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심녀(마 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따라서 우리가 이미 그분과 함께 거하는 것으로 여기신다.

  12. 7 이는 XJ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자비하심: X는 Q이 자비를 사람들에게 실증하신 특별한 통로였다. "Q께서 X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후 5:19) 오는 여러세대: 즉 "다가올 영원한 세대들“ *2:7 무궁토록 공부할 주제 인간이 구속의 경륜을 깨닫는 데는 무궁한 세월이 소요될 것이다. 구속의 경륜이 한줄 한줄 공개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드러날 것이다(원고 21, 1895).

  13.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Q의 선물이라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Q편에서는 은혜를 베푸시고 인간편에서는 믿음을 행사한다. 믿음은 Q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그분에게 의탁하는 행위를 통해서이며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통로일 뿐이다.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즉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Q의 선물: 구원은 돈이나 값없이 거저 받는 선물이다.

  14.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행위는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그 누구도 "내가 구원을 얻었다"라고 스스로 자랑할 수 없을 것이다. 구원의 계획에 녹아있는 목적중 하나는 영원토록 Q의 은혜의 풍성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2:8,9 자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인간은 계속 자아를 높이고, 자랑할 위험 중에 빠져 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자신의 연약성을 드러낸다.… 죄인이 회심한 후에 생활에 나타나는 커다란 변화는 어떤 인간적 선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적인 자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원고 36, 1904).

  15.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XJ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Q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For we are his workmanship 그의 만드신 바: 포이에마(poiema)"만들어진 혹은 이뤄진 것" "작품" "피조물" "시"라는 뜻의 영어단어 "poem"은 poiema에서 파생된 것. 여기서는 Q이 사람을 영적으로 재창조하시는 것 언급. 그분은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다시 지으셨다.

  16. XJ 안에서...지으심을 받은 자니: 사람은 스스로 선한 일을 하지 못한다. Q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선한 일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X 안에서 영적으로 재창조 받아야 한다. 의지와 애정과 목적이 변화돼야 선한 일을 통해 증거하는 특권과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 전에 예비하사: "사전에 준비하사"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그 사실에 대한 증인으로서 선한 일을 하도록 창조전에 계획이 세워졌다. 그 가운데서 행하게: 선한 일 가운데 행하는 것은 요구받아서가 아니라 신자의 삶에 창조된 새 생명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습관적인 행동이어야 한다. Q은 선한 일을 할 기회뿐 아니라 선한 일을 할 수단도 제공하셨다.

  17. -선행의 장소- (우리의 높은 부르심, 122)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XJ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Q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누구도 인간의 어떤 행위가 자신이 범한 죄의 빚을 갚는 데 최소한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제한적이고 편협한 주장을 하지 않게 하라. 이것은 치명적인 기만이다. 만일 그대가 이것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속죄를 탐구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아주 희미하기 때문에, Q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악한 자의 자녀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Q께서는 항상 율법의 요구대로 선행을 요구하셨지만, 인간은 선행이 무가치하게 되어 버리는 죄 가운데 자신을 두었기 때문에, J의 의만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18. 그렇다면 선행은 실제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가? 매일 죄를 범하면서도 처벌받지 않는 죄인은 X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성실히 행하려고 애쓰는 자와 동일한 은총을 누리는 것으로 Q께서 간주하시는가? 성경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XJ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Q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당신의 거룩한 조치로, 곧 당신의 과분한 은총을 통하여 주께서는 선행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 우리는 X의 공로를 통해서만 가납된다.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자비의 행위, 곧 자선의 행동은 믿음의 열매들이다.

  19. 그러므로 그것들은 우리에게 축복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상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행이 Q께 가납되게 만드는 것은 X의 공로의 향기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상해 주실 일을 우리가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은혜이다. 우리의 행위에는 아무런 공로가 없다. 우리는 Q에게서 호의를 입을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의무를 행했을 뿐이며, 우리의 일도 우리 자신의 죄된 본성의 능력으로는 이룰 수 없었다. X는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다음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계 22 : 17). 인간이 저지른 어떤 죄도 갈바리에서 이미 그 요구가 충족되었다.

  20.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러므로 생각하라: X인이 자신의 이전 신분을 회상해 보는 것은 유익하다. 유대인에게는 Q의 말씀을 먼저 받았다는 특권이 있긴 했지만 (롬 3:1,2)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동일한 방법으로 메시야와 새 언약관계에 들어갔음을 알게 된 것은 양쪽 모두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갈 3장 ①갈라디아인들 ②A도 ③이방인도 ④만민이 믿음으로) 육체로 이방인: 이방인의 무할례 상태를 지칭 할례당...무할례당: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용어

  21. 12 그 때에 너희는 X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Q도 없는 자이더니 X 밖에: 혹은 "X와 떨어져" 그분과 분리돼 있다는 뜻. 이것은 이방인에 대한 정죄가 아니고 그들이 메시야와 연결돼 있지 않아 중생케 하는 능력의 근원이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 뿐이다. "X 밖"은 바울이 자주 반복한 주제인 "X 안"과는 반대되는 비참한 상태이다. 밖의 사람: "멀리 떨어져 있음" 외인: Q은 A과 및 그의 후손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들은 이방인도 그 언약의 특권을 누리고 참 Q을 섬기는 예배에 참여하도록 초청해야 했다. 그들은 Q의 계획을 실현하는데 실패하여 이방인은 "밖의 삶"이자 "외인"으로 남게 됐다. X가 오시기 전까지 "약속의 언약들"에 대한 지식은 이와 같이 거의 유대인에게만 국한됐다.

  22. 소망이 없고: 이방인은 메시야가 오리라는 소망이 없었기에 그분에게서 샘 솟아 나오는 축복을 소망하지도 않았다. 로마의 카타콤에 있는 X인의 묘비명에서는 "소망"이라는 말을 흔히 발견하지만 이교도의 묘비명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다. Q도 없는 자: 아쎄오이(atheoi) 이 말에서 영어단어 "atheist" (무신론자)가 파생됐다. 여기서는 "Q을 알지 못함"이란 뜻, 이것은 곧 궁극적인 빈곤과 상실을 의미. 이방인은 신이 없다는 의미로 본다면 무신론자라고 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많은 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룩함과 사랑과 공의와 자비의 속성을 지닌 참 Q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23.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XJ 안에서 X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피로: 우리는 그분의 피로 화목해지고 (롬 5:10)그분의 피로 구속받고 (골 1:14)그분의 피로 의로워지고(롬 5:9)그분의 피로 깨끗해진다. (요일 1:7)X의 피는 Q의 선한 이름을 옹호하고 그분의 사랑을 증거한다. 아름다운 찬미 "만세반석 되신 주"의 작사가 Toplady는 헛간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엡 2:13을 주제로 기록한 것을 듣고 회심했다고 전해진다. 전에 멀리 있던...가까워졌느니라: X교회의 소명에 따라 복음은 이방인에게 전파되었으며 그들중 많은 이들이 반응을 보였기에 "가까워졌다."(354장 ①만세반석 되신 주 나를 숨겨줍소서 창에 허리 상하며 흘린 피와 물로써 나의 죄를 씻어서 정결하게 합소서 ②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줍소서)

  24.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둘로 하나를 만드사: 이제 유대인이나 헬라인, 종이나 자유인이 따로 없게 되었다. 중간에 막힌 담: "울타리 칸막이 벽"이 비유적 표현은 이방인의 뜰과 유대인의 뜰을 구분한 성전안에 있는 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담은 어떤 이방인도 감히 넘지 못했다. *율법: 불변하고 영원한 율법(moral law)-십계명, 지성소 법궤안에 놓여있음(신 9:10)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율법(ceremonial law)-의문의 율법, 지성소 법궤옆(신 31:26)

  25.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원수된 것: "중간에 막힌 담" "계명의 율법"과 동격 X께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는 행동을 통해 원수된 것을 제거하셨다. 의문: dogmata "규례" "명령" "법규" 눅 2:1-"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영을 행 17:7-일반적인 가이사의 영 행 16:4-예루살렘 총회의 규례묘사 이 절에서는 dogmata가 유대의 율법규례를 지칭 속한: "규례들로 이루어진 계명의 율법" 계명의 율법: 이것은 의문의 율법을 지칭

  26. 원수가 된 이유는 바로 유대인들이 의문법을 풀이한 해석과 그에 덧붙여 만든 조항들 그리고 그 결과 유대인들이 지니게 된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나라"에 들어오고자 하는 이방인은 율법의 요구사항들로 이뤄진 복잡한 제도와 마주쳤다. 그 제도가 이방인에게 얼마나 매력이 없었을지 또한 Q이 그런 제도를 창시하셨다는 논리로 인해 염증을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유대의 제도는 이방인들이 참 Q을 경배하는 신앙을 받아 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넘지 못할 장애물. 중간에 막힌 담으로 버티고 있었다. 유대인은 이방인 이웃을 몹시 싫어하고 혐오하는 반면 이방인도 유대인 이웃을 미워하고 멸시했다.

  27. 유대교에서 기독교로의 전환이 바울이 본 절에서 제시하는 주제이다. 유대교는 그것과 관련된 율례 및 규례와 함께 폐했다. X를 받S이고 장벽을 헐어버림으로써 "멀리 있던" 이방인들이 "가까와졌다". 하지만 유대교가 폐했다는 것이 곧 Q이 유대인에게 주신 모든 율법을 폐지했다는 뜻은 아니다. X를 가리키던 의문의 율법은 X가 그 표상들을 성취하시자 자연스럽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Q의 품성의 필사본인 도덕률은 Q처럼 영원하여 결코 폐지될 수 없다. 유대인의 율법제도가 종결됐다고 가르칠 때마다 바울은 도덕법이 폐지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강조했다.

  28.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할례가 종결됐음을 말하면서 바울은 조심스럽게 부언했다. "오직 Q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전 7:19) 자기 육체로: 십자가에서 그분의 몸을 희생함으로 폐하셨으니: katargeō "취소하다""무효화시키다" 이 둘로: "둘을" 즉 유대인과 이방인 한 새 사람: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이뤄진 화목외에도 많은 것을 의미 "새"에 해당하는 단어는 시간상으로보다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와 질적으로 다른 새 사람을 묘사. 지어: ktizo"창조하다"

  29. *2:14~16 십자가상에서 의식들은 끝이 났음(골 2:14~17) 성소 봉사와 관계가 있는 의식들은 상징과 그림자로 X를 예표하는 것으로써 X의 십자가 때에 도말되었다. 왜냐하면 십자가 위에서 참되고 완전한 제물 곧 Q의 어린양의 죽음으로 표상은 그 원형을 만났기 때문이었다(원고 72, 1901).

  30. *십자가에 못박힌 분은 X이지 율법이 아님(롬 3:31) 십계명은 살아있고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표상이 X의 죽음에서 그 원형을 만났을 때에 희생과 헌물로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X 안에서 그림자는 그 실체에 도달한 것이다. Q의 어린양은 완전한 제물이었고, 충분한 제물이었다. Q의 율법은 여호와의 보좌가 있는 한 그 고상한 성질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이 율법은 Q의 품성의 표현이다. 표상, 그림자, 그리고 희생과 헌물은 십자가에서 X께서 죽으신 후에는 아무런 효험이 없지만 Q의 율법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 만약 율법이 십자가에 못박혔다면 사단이 하늘에서 얻고자 하였던 것을 다 얻었을 것이다. 사단이 하늘에서 이것을 시도하였기 때문에 하늘에서 추방된 것이다. 그는 그가 속여 넘긴 그의 사자들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는 오늘날 Q의 율법에 관하여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원고 167, 1898).

  31. *사단의 파렴치한 거짓말(요일 3:4) Q이 사람에게, 현세와 내세에서 그의 계명을 범하고 사는 특권을 얻어 주시기 위해서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주신 그 무한하신 희생을 치르신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단에게서 비롯된 파렴치한 거짓말로써 그 거짓되고 기만적인 성격이 드러나야만 한다. 사단이 그토록 간절히 취소되고 무효화된 것으로 간주하려 했던 이 율법은 크신 의의 도덕적 표준이다. 그 율법 중 어느 계명을 범해도 그것은 Q을 대적하는 범죄 행위이며, 거룩한 율법이 정한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무효화시키고 계속해서 죄가운데서 사는 세계의 모든 거민들에게 틀림없이 죽음이 임할 것이다(원고 72, 1901).

  32.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Q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십자가는 화목이 수단과 원수된 것이 소멸된 장소로 언급된다. 십자가가 위대한 평준기이자 모든 사람을 위한 공통분모인 이유는 X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며 그분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 몸으로: 15절의 "새 사람"과 1:23절의 "몸"인데 이 둘은 X가 머리이신 "교회"(1:22)을 지칭 원수된 것을...소멸하시고: X의 죽으심으로 적개심이 사라졌다는 뜻 가정불화, 당파간 싸움, 국가간 증오, 종파간의 시기심, 개인의 갈등과 긴장 등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Q의 자녀가 되어 "X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치유된다. 십자가로(Thereby) "그것 안에서" "그분 안에서"

  33.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오셔서: 그분이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통해 임재하시는 것을 가리킬 것임. 성령을 통해 평안의 복음이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전해졌다. 평안을 전하고: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14) 그분은 우리에게 평안을 보증하실 뿐더러 우리의 평안이시다. 먼데...가까운데: 사 57:19 언급한 것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34. 유대인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화목이 필요했는데 이는 유대인이 Q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서도 유전과 죄로 인해 Q과 분리됐기 때문이다. (사 59:2; 갈 1:14; 벧전 1:18) X가 죽으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진 사건(마 27:51)은 표상이 원형을 만나서 의식제도가 종결됐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눴던 벽이 무너졌음을 상징

  35.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F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한 성령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서로 다른 성령이 존재하지 않는다. F: 특히 먼데 있던 자들-자기 신들에게 싫증이 나서"알지 못하는 신"(행 17:23)을 찾던 이방인들에게 사랑 많은 F라는 개념은 강한 호소력이 있다. 나아감: prosagoge "접근""들어감" J께서는"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요 10:9) 모든 종교의 참 목적은 Q에게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저""성령""F"라는 표현을 통해 삼위Q이 모두 제시됐다.

  36. *2:18 X의 이름의 공로들 우리는 J의 이름의 공로를 의지하여 Q께 나아간다. Q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시련과 시험들을 X께 가져 가라고 하신다. 이는 그가 그 모든 것을 이해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불행을 인간의 귀에다 쏟아 놓지 않기를 바라신다. X의 피를 통하여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을 수가 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 “Q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나를 받으신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한 성령 안에서 F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Q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37. 마치 땅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언제든지 오라고 하시는 것같이 주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부족한 것들, 곤란한 문제들, 우리의 기쁨과 사랑을 그분 앞에 갖다 놓으라고 하신다. 모든 약속은 확실하다. J는 우리의 보증인이요, 중보자시며, 우리가 완전한 품성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자원을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곳에다 두셨다. X의 피의 공효는 항상 살아있고 그것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이는 우리가 그분의 공로를 통해서만 용서와 평화를 갖기 때문이다. X를 믿는 믿음으로 X의 피의 능력이 그 영혼에게 현실로 나타날 때, 그 신자는 선한 행실과 의의 열매를 맺음으로 그의 빛을 비출 것이다(청년 지도자 1892. 9. 22).

  38.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Q의 권속이라 외인도...손도: 외인(크세노이 xenoi)-외국인 손(파로이코이 paroikoi)-절반쯤 외국인 즉 시민권이 없는 거주자로서 "나그네체류자" 성도들: 이제 유대인 X인들 모두 성도에 포함되어 1:23, 2:16의 "몸"을 이룬다. 권속: 가족 구성원과 친척, 그들에게는 보호와 부양과 교제의 특권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나그네나 손님이 아니라 이제는 영구적인 거주자들이다.

  39.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XJ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터와 동격: "터 곧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는 의미 Q이 자신의 은혜의 풍성함을 계시해주신 선지자들과 은혜를 특별히 전달하는 사도들이 이 터를 이룬다. 다른 X인들은 건물의 구조를 형성한다. 이 구절에는 교회가 사도에 불과한 베드로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되어있지 않고 모퉁잇돌인 X와 함께 모든 선지자와 사도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되어있다. 터: 비유는 건물안에 있는 사람에서 건물자체로 바뀐다. X가 터로 제시된 고전 3:11의 비유적 표현과는 다르다.

  40. 모퉁잇돌: 비유의 목적은 모퉁잇돌이 건축물을 결합시켜줌을 보여주는 것이다. X는 신령한 건물의 여러부분을 결합해 구조와 연합을 유지하신다. -벧전 2:5,6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JX로 말미암아 Q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시 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41. *2:19~21 광채가 없는 돌은 가치없는 돌 살아있는 이 능력의 샘에서 우리가 그 샘물을 마음대로 길어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X의 선하심을 깊이 생각하므로 가질 수 있는 그 기쁨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잃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Q의 자녀가 되는 것, 곧 주께서 거하실 거룩한 성전이 되어 가는 것, “이제부터는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Q의 권속”이 되는 것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XJ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것 이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만약 모든 돌이 적당한 장소에 있어서 산 돌이신 그분이 빛을 발하게만 한다면 세상에 많은 은혜를 끼칠 수 있는 교회의 현 상태를 보시고 하늘은 참으로 놀라지 않겠는가! 빛을 내지 않는 돌은 가치없는 돌이다. 우리 교회의 가치는 생명이 없고 광택이 없는 돌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산 돌, 곧 크신 모퉁이 돌이신 의의 태양으로부터 밝은 빛줄기를 받는 돌들로 되어 있다(편지 15, 1892).

  42.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그의 안에서: JX 안에서 이 서신의 핵심구절. X인은"그의 안에"있을 때 성장한다. 서로 연결하여: 쉬나르몰로게오(sunarmologeo)"서로 꼭 연결하다" 교회는 우연히 쌓인 돌무더기가 아니라 형태를 갖추고 결합된 것. 각 돌은 각자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건물의 안전도는 주의 깊은 계획에 달려있다. 되어가고: 새 교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43.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Q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J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너희도: 이방인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에서→ "Q의 거하실 처소"가 되는 상태 성령, Q, J → 성전

  44.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45. 1 이러므로 XJ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이러하므로: 더 이상 외인과 손이 아니라 거룩한 전으로 세워진 이방인들에 관한 진술을 통해 Q의 전반적인 목적을 제시하려 한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내용으로 에베소교인들의 주의를 재치있게 이끈다.

  46. <3장의 교훈의 중요성-목사와 복음교역자, 391> 시험받을 때에 그분께서 나를 돌보시며, 나를 위해 간구하시며,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라. 나는 내 자신을 아낌없이 그분께 바치겠다.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주인 것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서 슬퍼할 때 우리는 X의 마음을 슬프시게 한다. 아니다. 우리는 신실하신 창조주이신 Q께 우리 영혼을 지켜 주시도록 맡겨야 한다. 그분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시련과 시험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간구하신다. 그대의 마음을 의의 태양의 광명한 빛을 향하여 열라. 의심의 씨앗을 뿌리지 않도록 그대는 한치의 의심도, 의심 섞인 단 한마디의 말도 그대의 입술에서 흘러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를 위해 풍성한 축복이 있다. 그것들을 믿음으로 붙잡도록 하자. 내가 그대에게 간청하노니 주님 안에서 담대하라. 신령한 능력이 우리의 것이다. 용기와 능력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자. 에베소서 3장을 읽으라. 주신 교훈을 실천하라. 모든 환경 아래에서 Q을 위해 산 증거를 하라.

  47. XJ의: X에게 속한 죄수 곧 X를 위해 갇힌 죄수 너희 이방을 위하여: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해 일 하다가 (행 21:28)특히 그들이 동일하게 약속의 후사가 되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옥에 갇혔다. 따라서 그는 동족에게 미움을 샀다. 그의 시야는 모든 민족적인 장벽을 넘어섰다. 갇힌 자: 훌륭한 사업을 위해 옥에 갇히는 것이 자유로운 몸으로 의무와 특권을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 더 낫다. 나 바울은: 그의 위대한 사명에 관한 진술로 그는 지금까지 묘사한 위대한 구속사업을 알리는데 있어 자신이 Q의 도구가 된 것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감탄하고 있다.

  48.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Q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너희를 위하여: 이방인을 위하여 은혜의 경륜: 청지기 직분, 바울은 자신의 임무는 높이되 자신은 낮춰 도구 혹은 청지기로 여겼다. 주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심으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14절까지 이어질 여담. 이 여담에서 바울은 두 가지 주제를 취급한다. 하나-이방인도 동료후사가 돼야 한다는 숨겨진 비밀의 계시 둘-이 비밀을 이방인에게 알리는 일로 바울을 특별한 사도직으로 부르신 소명

  49.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바울은 자신의 소명을 심오하게 깨달았다. 그는 사도였지만 자기 맘대로 하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가르침과 사명과 빛을 받았고 이 계시를 통해 복음의 비밀에 관해 철저한 지식을 얻었다.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JX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미...기록함과 같으니: "내가 위에서 기록한 바와 같이"

  50. 4 이것을 읽으면 X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Q의 모든 증인은 이렇게 자신의 기별이 진실하고 타당하다는 확신을 지닐 수 있다.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S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비밀은 Q이 그것을 나타내실 때만 알 수 있다. 모든 세대가 각기 계시를 가졌지만 X의 초림이후의 세대가 가졌던 계시에 비하면 그 정도는 미미했다. 한편으로 각 세대에 가장 유익이 되도록 고안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의 강퍅한 무지로 인해 제한됐던 계시는 어떤 의미에서 JX를 통해 완벽한 계시의 홍수가 드러나기까지는 점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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